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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불편한 존댓말

기사전송 2017-02-28, 20: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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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길을 걷던 중 받은 전화 내용은 ‘고객님께서 신청하신 보험금이 계좌로 입금되셨습니다’라는 보험사 직원의 친절한 안내 멘트였다.

내가 처음 존댓말을 들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여고를 졸업하기 전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마침내 인격적인 대우를 받게 된 것 같아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새롭다.

누군가를 존중하고, 존중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상대를 우대하는 말에는 상대방에게 공경의 태도를 나타내는 존대의 말과 상대방을 향해 말하는 사람의 겸손을 나타내는 겸양의 말이 있다. 부부나 연인, 동료 등 동등한 위치에서도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예가 적지 않다. 이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소중함이 깃들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흐뭇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때로는 존댓말이 거북할 때가 있다. 잘못 사용되고 있을 때가 그렇다.

존댓말이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호칭의 끝에 ‘님’자를 붙이고, 어미에 ‘시’ 또는 ‘세’가 들어가거나 ‘니다’, ‘ㅂ니다’ 등으로 표현이 된다. 그런데 지나치게 존댓말을 사용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듣기에 몹시 불편하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업종의 특성 상 자칫 한마디 말로 인해 고객의 비위를 거스르게 될까 염려해 최상의 존칭을 사용하려는 것인데,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일전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 아침 일찍 열차를 이용할 일이 있어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역 근처의 빵집에 들렀다. 계산대 앞에는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손님들로 북적거렸으며, 깔끔한 유니폼의 직원들은 민첩한 동작으로 일을 처리했다. 상품의 바코드를 통과하면 자동적으로 계산이 되기에, 빠른 응대는 시간이 없는 고객들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고객님, 빵과 음료를 합하여 5천원 되시겠습니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바쁜 가운데서도 고객의 기분을 고려해 모든 말끝에 존칭을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몸에 밴 습관처럼 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 듯 보였다.

백화점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할인코너에서 구경을 하다가 할인해주는 물건의 정확한 금액을 묻자, 판매 사원은 계산기를 두들기며 물건 값을 알려주었다. “원래는 50만원이신데요, 40% 할인하여 30만원 되세요”라고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이다. 매장의 규모나 정돈 상태, 몸에 익은 정중한 태도 등으로 보아 매우 교육이 잘된 종사자인 것 같은데, 문제는 지나친 친절교육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가 무의식 중 사용하는 말에는 잘못 사용되고 있는 존댓말이 많다. 스스로 자신을 높여 ‘나의 말씀’이라고 하는가하면, 지나친 겸손을 나타내어 우리나라를 ‘저희 나라’라고 표현하는 웃지 못 할 사례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소개하면서 ‘저의 부인’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나이 어린 사람이 윗사람에게 ‘수고하세요’라고 하는 말도 옳지 않은 표현이라고 한다. ‘수고하다’란 ‘일을 하느라 힘과 애를 쓰다’는 뜻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잘못된 존칭은 특정 계층이나 장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날씨나 사물을 말할 때도 존칭을 사용하여 웃을 때가 더러 있다.

고객을 상대로 무조건 고개를 수그리거나 존칭을 사용하도록 하는 교육방식은 바뀌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고객이 왕이라지만, 고객의 물건이나 물건 값에까지 존댓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나 ‘감사합니다. OO입니다’로 시작되는 전화의 첫인사 등 의식 없는 기계적 멘트보다는 정감 있는 편안한 말이 훨씬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 같다. 격을 갖춘 지나친 존댓말이 상대방을 불편하고 당황하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말의 힘은 총이나 칼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 필요한 곳에 제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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