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봄은 오고 있는가
정치의 봄은 오고 있는가
  • 승인 2017.03.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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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영화관이 처음 생겼을 때 학생들의 극장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변장을 하고 몰래 극장에 들어가는 간 큰 친구들도 더러 있었지만 들키면 정학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가끔씩 학생들의 단체 입장이 허용되는 영화가 있었다. 기억나는 것은 ‘똘똘이의 모험’이다. 국민학교 학생인 똘똘이와 복남이는 괴한들이 창고에서 쌀을 훔쳐 북한으로 보낸다는 것을 알고 도적단의 소굴로 잠입, 숱한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경찰과 함께 일망타진하는 줄거리다. 영화에 열중하면서 오로지 정의를 위해 맹활약하는 주인공에게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쳤다. 지금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은 학교시절 단체로 극장에 갔던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정의를 3가지로 압축했다. ①공리주의, ②자유지상주의, ③공동선과 미덕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세 번째다.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정의는 무엇일까. 대통령 파면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동토의 정치판이 봄 눈 녹듯 할까.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생각이 끝이 없다. 정치는 한편의 드라마다. 주·조연 배우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또는 정상배요 국민들은 관객이다. 배우는 PD의 감독아래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하고 관객들은 마음 가는 배우의 팬이 된다.

전대미문의 대통령파면 드라마에서는 정의의 주인공 똘똘이가 없었다. 정치인과 정상배들은 똘똘이인양 코스프레를 했다. 그럼에도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딴 생각을 하다가 옆 사람이 박수를 치니까 멋모르게 따라하는 얼뜨기 관객도 있었다. 드라마가 흥미가 없어선지 아예 눈을 감고 잠자는 관객도 보였다.

민주주의의 얼개인 입법, 사법, 행정은 씨날줄로 거리와 폭을 재어가는 척 했지만 제 갈 길만 찾았고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은 주위 살피기를 게을리 하였다. 종내는 여당이면서도 야당 같은 제 식구의 등살에 밀리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공무원에 대한 탄핵은 국회와 정부 간의 겨루기다. 명목상 국민들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이 정부공무원의 위헌·위법 책임을 가리는 과정이다.

대통령의 파면은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평소 국민들과는 먼 거리에 있던 헌법재판소가 무소불위의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것을 보면서 법치를 아는 국민들도 헌재의 권한이 그렇게 큰 줄은 몰랐다. 현실적이면서 지루한 한 편의 정치드라마가 끝났지만 극중 장면의 곳곳에서 보인 께름칙한 느낌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관객들도 더러 있다. 정치의 봄을 못 느끼는 이유다.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헌재의 판결을 승복하고 사과하는 담화를 발표하라고 채근한다. 목적을 이루었어도 마음이 편치 않는 모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던 집으로 돌아오던 날 수많은 지지자들이 모였다. 버젓이 5년을 다 채우고 퇴임하는 여느 대통령 못지않았다. 그는 “늦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말을 했다. 야당 사람들, 종편 방송출연 단골들을 비롯한 일부정치꾼들은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헌재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이 말하지 않는다고 강제로 독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예우마저 포기한 박 전 대통령의 철학과 소신과 양심의 자유를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는 없다. 그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얼마 남지 않는 대통령선거 드라마에 주연이나 조연 역을 맡게 될 정치 배우들이 팬 그룹을 만드는가 하면 자기 관객들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치 드라마에서 배우는 관객들이 내는 입장비, 즉 국민세금으로 공연을 하면서 스타가 되고 누구보다 호사를 누린다. 드라마가 끝나면 관객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지만 그들은 늘 그 좋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교언영색으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다. 5월초에 개봉 예정인 대선드라마에서 관객들은 어느 배우에게 박수를 많이 칠까. 그 드라마는 보기 싫어도 꼭 봐야 한다. 우리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를 보면서 샌델슨이 말한 정의의 핵심인 공동선과 미덕을 상기하는 일이다. 정녕 정치의 봄은 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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