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죽음의 노래
삶을 위한 죽음의 노래
  • 승인 2017.03.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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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경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이 12년째 1위인 나라가 이 곳,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어떤 것들이 그들에게 죽음의 선택이라는 ‘삶’보다 힘든 죽음의 ‘용기’를 주었던 걸까. 용기라는 표현에 많은 이들이 반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향정신성의약품의 복용이나 기타 여러 가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의 행위라면 일종의 사고로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눈물을 흘리며 유서를 남기고 치밀한 계획을 통해 실행에 옮기는 것을 보면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날마다 고민을 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성에 대한 분석과 새로운 시장 상황에 따라 기획을 하고 얼마나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를 미리 고민하고 연말이 되면 결산을 통해서 내년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교직에 종사하는 이들은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설계와 인성의 형성과정에서 꼭 필요한 ‘배려와 정의’를 가르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입시나 취업을 위한 경쟁과 요령을 최선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진학률과 취업률을 교육의 절대 가치로 가르치는 안타까운 현실을 사명(?)처럼 수행하고 있다. 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다. 제자의 어려운 사정을 남몰래 돕고 배려하는 스승도 있고 학부모들의 핀잔과 야유를 들어가면서도 본인의 주관을 굽히지 않는 필자가 알고 지내는 훌륭한 교육자도 있다. 이렇듯 각자의 영역과 사회적인 역할에 따라 날마다 새로운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새로운 고민이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경우가 전혀 새롭지 않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오늘의 고민은 어제의 고민과 별반 다를 바 없고 어제의 고민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오늘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딜레마에 빠지면서 ‘나는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독백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물며 누가 어떤 것을 이루어 내고 내가 꿈꾸던 어떤 것을 다른 이가 성취를 했다면 그 당사자는 행복해야 할 텐데, 정작 그들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비록 남들이 부러워하는 어떤 것을 성취했다하여도 그 만족감은 잠시뿐이고 다른 고민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은 살아가는 일이다. 처음 태어나서 기본적인 욕구에 의존하고 살아가다가 학습을 통해서 하나둘 사회성을 배우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삶이다. 그런 삶이 저마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성장해 가는데,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람으로 서서히 ‘얼굴’을 만들어 간다. 다른 이들을 믿지 못하고 혼자만의 사고의 방에 갇혀서 검증된 주변사실에 대해서도 부정하고 본인의 주장이 당장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단으로부터 스스로 이탈되어 고립된 채 살아간다.

잘 살아가는 것은 잘 죽어가는 것이다. 대부분 죽음을 ‘끝’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의미나 피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개념으로 여기거나, 너무 두려운 나머지 내세(來世)를 통한 환생(幻生) 또는 낙원이나 지옥 등의 종교적인 개념을 통해서라도 삶의 연장으로 믿고 싶어 한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죽음은 삶에 대한 보상임을 알 수 있다. 치열하게 살아가며 사랑하고 관계를 통해 끝없는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며, 휴식의 개념이 죽음이다. 죽음조차 없다면 우리는 언제 쉴 수 있을 것이며, 그 많은 욕심과 욕구들은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갈 것인가.

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라는 말이 있다. 말을 타면 노비를 거느리고 싶어진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아흔 아홉을 가진 이가 하나 가진 이의 것을 탐낸다’는 말도 있다. 채워지지 않는 하나는 어쩌면 영원히 채워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를 ‘결핍’이라고 착각을 하며 채우려고 애를 쓰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이다. 이런 이들을 추종하는 더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죽어봐야 알 수 있다. 얼마나 채우고 또 채워야 그만 둘 것인가.

잘 죽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힘들게 해서도 안 될 일이고 누군가를 기만하거나 우롱해서도 안 될 일이다. 절대 나 혼자 잘 살아갈 수는 없다. 어차피 죽음은 나 혼자 가는 길이다. 그 혼자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의 원성과 한탄을 만장처럼 나풀거리며 외롭게 걸어갈 것인가. 지금의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안타까운 가장 큰 이유는 잘 살아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게 슬픔과 절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나보다 더 외롭고 지친 이들이 삶을 포기하고 죽음의 노래를 읊조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동안 잊고 지낸 이들이 나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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