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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한낮’의 대화

기사전송 2017-03-26, 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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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최근에 발표한 시집 ‘여자, 새벽 걸음’은 여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수록되었다. 처음부터 독자들이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은 몇 작품 정도는 화자가 여자일 수 있어도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어떻게 남자가 여자의 입장으로 시를 쓸 수가 있냐는 부분이었다. 필자는 여러 언론과 잡지를 통한 보도 자료에서 이미 이 부분은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고 얼마든지 표현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동성이라고 해서 전부를 이해할 수 없듯 이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동성이라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도 좀 더 어려운 경로나 경험을 통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함은 있지만,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시’는 가장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소설이나 수필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모두 해결(?)되는 친절함이 있는 반면에 시는 기껏 제목에서 전체를 이해하는 단서를 유추해보는 것이 작가가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너무나 간결하고 단순해서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작품들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떤 것이 더 훌륭한 작품인지는 가늠하기 힘이 들지만, 현학적인 표현을 통해서 독자들을 미로 속에 빠뜨리고 본인만 만족하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것과 쉬운 작품임에도 깊이 공감할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중의적인 시어들과 비유와 은유를 통한 다양한 표현으로 작품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데, 한 마디로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운문의 묘미를 잘 살리면서 독자들이 끄덕이며 마침내 이해될 수 있는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좋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몇 일이예요?/10일이죠?//묻는 거야?/가르쳐 주는 거야?//얘기하고 싶어서요.



‘한낮’이라는 작품의 전문이다. 이 짧은 작품은 3개의 연과 5개의 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게 전부다. 이런 유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급하게 읽으면 한사람의 독백인지 두 사람의 대화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천천히 읽어보면 1,2,5행과 3,4행으로 화자가 구분이 되어 짐을 알 수 있다.

모든 관계에서 무료는 무관심이 낳은 질병이 아닐까 싶다. 특히 연인이 사귀게 되면 처음에는 시간이 모자랄 만큼 이야기할 것이 많고 사소한 일상의 대화에서도 웃음을 터뜨리며 행복에 겨워하곤 한다. 그러다가 서로의 친구와 가족을 소개하면서 관계의 폭이 넓어지고 마침내 서로를 인정하는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새로운 가정이 만들어진다. 두 사람이 익숙해지면서 소홀해지고 그럴 때쯤 출산을 하고 아기의 몸짓 하나에도 행복에 겨운 새로운 공감대가 형성이 되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안정감은 불안과 초조라는 긴장감을 이겨낸 편안함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관심의 이완(弛緩)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안정이 되면 본능적으로 삶의 본질에서 배제할 수 없는 갈등과 분쟁이 잦아지고, 그 단계조차 넘어서면 무심해지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무료함은 거짓말처럼 말을 건넨다. 함께 있어도 대화할 소재가 사라지고, 어느 휴일 한낮에 TV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남자에게 여자가 말을 건넨다.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어보지만, 침묵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체념하지 않고 다시 ‘10일이 맞나’ 하고 묻자, 남자가 ‘알면서 왜 묻나.’ 면서 역정을 낸다. 고개를 숙인 여자는 혼잣말처럼 대답을 한다. 얘기라는 걸, 대화라는 걸 해 보고 싶어서라고 대답을 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인가. 한때 그녀와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모임이나 직장에서 갖은 핑계를 대고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를 무엇이 이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게 만들었을까. 그건 무관심이다. 그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오만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가 함부로 대하는 지금의 그녀가 건네는 희망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녀가 말을 건네면 무엇을 하고 있건 멈추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그녀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잡아야 한다.

더 이상 삶이 무의미하거나 무료해져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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