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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정도(正道)에 희망을 걸며

기사전송 2017-03-29, 21: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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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힉교대학원 아동문
학과 강사
세월호를 인양하였다. 침몰한 지 1천 75일 만이다. 304명의 생명을 수장시킨 세월호를 바라보며 우리는 죄 없이 죽어간 꽃다운 생명과 무너지는 억장을 추스르는 유가족을 대할 면목이 없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또, 월남이 월맹에 패망하던 그런 전철을 밟을까 노심초사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들은 촛불이 되고 태극기가 되었다. 나라를 구해보려는 구국 충정의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까닭에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우리의 평안과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19C의 고민은 신의 사망이라고 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20C를 사는 지금은 절망의 시대인데 죽어버린 신을 되돌려 살려낼 수 있을까? 그래도, 사무엘 베케드의 ‘고도우를 기다리며’의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흔들며 광화문 거리로 모여들었다. 거기에 우리를 가르쳐주실 세종대왕(동상)과 이순신 장군(동상)이 계시기 때문이리라.

보라, ‘어쩌다 어른’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역사 읽어주는 남자’의 한국 통사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들 마음에 한자락 빛살이 비치지 않는가? 이 빛살 속으로 따라 들어가 보면 나라가 바로 설 통로가 보인다. 우리 각자가, 세종대왕이 살아온 애민정신의 마음을 이어받고, 사사로움에 흔들림 없이 올곧게 살아온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산다면 악몽같은 이 시대를 벗어날 수 있겠다. 애민과 올곧음이 우리를 정화시켜 가슴 깊숙이 울림을 준다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겠다. 그래서 임신한 노비의 건강을 염려하는 ‘세종대왕’ 전기를 다시 읽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다시 읽는다. 어릴 때 읽은 ‘난중일기’에서는 장군의 지혜로운 계략과 승승장구한 업적만 보였다. 요즈음 시국에 다시 읽으니 업적에 대한 존경심보다, 작은 일 하나에도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잘못 행함 없이 ‘정도’ 대로 살아온 정신이 거룩하게 다가온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올곧고 힘들게 ‘정도의 원칙’으로만 충실하게 살아온 그 정신이 우리 각자의 생각에 박혀 있었다면 세월호의 참사나 대통령의 탄핵 같은 비운이나 수치는 없었을 텐데….

이순신 장군을 기억해 본다. 장군이 1582년 발포수군만회로 있을 때, 상관 전라 좌수사 성박이 잔치에 쓸 거문고를 만들 발포 영내 오동나무를 베어 오라고 심부름꾼을 보내었다. 그때 “영내 오동나무는 국가 재산이라 사사로운 일에 쓸 수 없다” 며 돌려보냈다. 그 일로 앙심을 품은 성박이 발포에 파견된 군기경차관(검찰관) 서익을 매수해 이순신이 군기를 보수하지 않았다는 누명을 씌워 파직시킨다. 하지만 이순신은 파직을 당하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고된 길을 걸었다. 화살총을 탐내어 달라고 하는 정승에게도 “이까짓 전통(箭筒) 하나로 정승의 이름을 더렵혀서야 되겠는가!” 하며 뇌물 바침을 거절하였다. 나라 제일의 대학자이며 조정 실세인 율곡 이이가 먼 친척뻘이라 이순신의 명성을 듣고 만나보려 했을 때도 거절하였다. 율곡이 관직에 있는 동안은 승진을 청탁하려 한다는 세간의 오해를 살 것을 염려해서였다. 사사롭게 인연 맺지 않으려는 장군의 마음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국의 참사들을 보면 무릇, 사람이나 재물과 사사롭게 인연 맺어 얼마나 큰 참사를 몰고 왔는지 교훈을 준다. 이런 갈증으로 ‘난중일기’를 읽고 나서 도현신이 쓴 ‘장군 이순신’도 읽었다. 이 책에서 내가 잘못 알고 있있던 두 가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첫째, 나는 줄곧 이순신 장군의 조부 이백록이 기묘사화 당시 역적으로 사약을 받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부 이백록은 기묘사화 15년 후까지 살아있었다고 ‘중종실록’에도 남아있단다.

둘째, 이순신이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랐다는 내용이다. 이순신의 증조부 이거는 연산군을 가르친 스승이며 20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해서 이순신이 6~8명의 노비와 충남 은진 집과 토지도 받아 넉넉하게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 날조된 것일까? 자수성가의 신화를 좋아하는 독자들 편에 편승해서 유복한 집안을 궁핍한 환경으로 바꿔 쓴 작가의 양심이라면 사사로운 잘못이 아니다. 후세에 오히려 장군의 진실성 뿐 아니라 작가마저 사구려로 치부될 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장군은 전쟁을 쉬는 중에 어머니를 찾아 자주 문안 드렸고 먼저 죽은 막내아들 ‘면’의 죽음 앞에서는 애통해하는 평범한 지아비였다. 거기에 미화를 보탤 필요가 뭐가 있을까?

무릇, 나를 비롯한 작가들은 죽은 장군을 욕되게,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작가의 양심도 다잡아본다. 역사는 흐른다. 나라를 위한 큰일을 하려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선 이 자리에서 나부터 ‘정도의 원칙’대로 내 삶을 살아간다면 이것이 바로 나라를 위한 일이요. 내가 사는 길이요. 희망임을 월리암 브레이크의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ce’ 시가 대변해준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하늘을 본다/ 너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에 영원을 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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