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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시선(視線)의 한계

기사전송 2017-04-02, 20: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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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라는 자막이 현수막처럼 각종 매체 여기저기 내걸리고 구체제의 종결을 알리는 폭죽처럼 보도되는 일부 기사도 간혹 보이곤 한다. 그런가. 과연 그녀 한사람의 부정과 부패의 산물들이 구속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의 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럼 야권의 인사들은 지금까지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세력들의 존재를 전혀 몰랐거나, 설마 이 지경까지는 아닌 줄 알고 방치하고 있었던 것일까.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미 여의도에는 위험한 소문들이 퍼져 있었고, 그 소문들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이 밝혀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오히려 소문보다 더 극적이고 소문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며 박탈감을 금할 길이 없다. 한계다. 그들을 지켜보지 못한 국민들의 시선이 가질 수 있는 한계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미 그들과 함께 국민 대표의 의무를 이행하던 민주 인사들은 왜 그동안 침묵하고 있었던 것일까. 정치적인 한계, 협상과 타결을 거듭하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속내를 몰랐던 것이 한계다.

눈이 가는 방향을 시선(視線)이라고 한다. 눈길이라는 고운 우리말도 있지만, 주의나 관심을 나타낼 때도 쓰인다. 시선은 제대로 향해야 한다. 의사의 시선은 환자를 향해야 하고 선생님의 시선은 학생에게 향해야 하고 정치를 하는 이들의 시선은 국민에게 향해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들이 생긴다. 대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한 개인이나 이해관계자 몇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태민에서부터 최순실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내린 근대사의 집요하고 끈질긴 검은 뿌리가 썩은 줄기와 잎들을 맺으며 정치는 물론이고 문화, 경제 게다가 교육에까지 영향을 주며 마침내 아이들의 미래 성장 동력의 가능성마저 잘라 버리고 열성인자들의 양산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끝내 본인들은 물론이고 온 나라를 혼란과 파멸의 길에 이르게 만드는 것은 잘못된 시선의 당연한 결과이다.

이를 비호하는 극우세력들의 발언들도 공분을 자아내게 만든데 일조한다. 정미홍 전 아나운서는 전주 태극기 집회 참석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핵 심판은 각하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만약 인용이 된다면 먼저 목숨을 내 놓겠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된 바가 있다. 그 후 그녀는 “내가 탄핵 인용되면, 목숨 내 놓겠다 했더니 무슨 자살 선언이라도 한 것처럼 언론들이 다투어 보도해준다”며 “나는 불의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걸 강력하게 천명한 것이다. 누구 좋으라고 죽냐”고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 추가 입장을 내놓았다. 한 언론인의 죽음에 목말라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극단적인 표현들은 유치하기 그지없기 마련이다. 이를 흑색선동이라고 한다. 한 대선주자는 출마 공식선언한 뒤 기자들이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았는데 출마 자격이 있냐는 질문에 만약 0.1%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만 없는 사실을 가지고 또다시 뒤집어씌우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을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그럼 노 전 대통령은 없는 사실을 가지고 뒤집어 씌워서 자살한 것임을 인정하는 건가. 왜 굳이 이미 스스로 힘든 길을 택한 비운의 대통령을 예로 들어야만 했을까. 언론인도 정치인도 국민에게 따스한 눈길을 가져야 한다. 3년간 어두운 바다 속에서 아이들을 품은 채 침묵하다가 마침내 떠올랐을 때에도 한쪽에선 이미 죽은 생명들에 수천억의 자금을 낭비해야 하냐는 막말을 하니 다른 한쪽에선 박 전 대통령이 가라앉으니 세월호가 떠오른다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막말로 응수를 한다. 이게 뭐하자는 말장난인가.

지금은 슬프다. 온 나라의 국민들이 다 슬프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태극기를 들지 않는다고, 촛불을 들지 않는다고 분노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들을 그냥 바라보는 이들도 슬프다. 아픈 이들은 병원을 찾는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단지 쾌유를 바라는 심정 하나뿐이다. 비싼 진료비나 입원비는 수납을 하면서 환자를 지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나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지불하고 의사의 처방을 받고 병마와 다투는 데 주력한다. 국민들이 아프다. 수많은 아이들이 우리 눈앞에서 수장(水葬)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그 해에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만큼 공범(共犯)의 심정으로 살아왔는데, 무엇이 그리도 억울하고 무엇이 그리도 분하고 무엇이 그리도 당당한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바람에 그 어린 생명들의 손을 놓쳤다면 생존학생들은 물론이고 더 이상 아이들로부터 시선을 돌려서는 안 된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끊임없고 뜨고 지는 실세들의 행보에는 관심도 미련도 없다. 다만 그들의 눈길이 국민들에게 향해 있어야만 할 것이며, 재임기간동안 그 눈길을 거두어선 안 된다. 이것은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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