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귀신도 쫒아낸다 - 벽사문배도에 나타난 새
닭은 귀신도 쫒아낸다 - 벽사문배도에 나타난 새
  • 승인 2017.04.0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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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우리의 민화 중에 ‘벽사도’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삿된 기운 즉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그려진 그림을 말합니다.

이 벽사도의 하나로 ‘문배도(門排圖)’가 있습니다. ‘문배도’란 글자 그대로 문에 붙이는 그림입니다. 그리하여 ‘벽사문배도’라고도 하는데, 주로 설날에 많이 이루어졌으므로 ‘세화(歲畵)’라고도 합니다.

이 풍속은 처음 궁중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점차 민가로도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일반 여염집에서 많이 그려 붙인 그림은 닭과 호랑이였습니다. 둘 다 수호(守護)와 길상(吉祥)을 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닭이 많이 그려 붙여진 것은 닭이 가진 특성과 상징하는 바에서 배울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닭은 우선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의 밝음을 가져오기에 상서로움의 상징이었습니다. 닭이 울면 귀신도 물러간다고 보았습니다. 닭이 울면 저승문도 닫히게 되는데, 만약 저승문을 제 때에 통과하지 못하면 귀신이라고 하더라도 영영 목숨을 잃고 만다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닭은 대표적인 양성(陽性) 동물로서 나쁜 귀신을 물리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닭은 태양을 불러오는 기운을 지닌 동방(東方)의 동물로서 희망을 상징하였습니다. 해는 동쪽에서 뜹니다. 해가 뜨면 가슴이 벅차오르게 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닭울음소리는 곧 힘든 현실을 밀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신호로 보았던 것입니다.

닭은 부지런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남 먼저 일어나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리고는 이내 홰에서 내려와 먹이를 찾기 시작합니다. 홰에서 내려 올 때에도 날갯짓을 크게 하여 그 시작을 스스로 장대(壯大)하게 다집니다. 따라서 닭으로부터 굳센 자립(自立)의 자세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은 닭울음소리에 맞추어 일어나고 일을 나갔던 것입니다.

또한 닭으로부터 철저한 마무리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닭의 눈길은 매섭습니다. 그리하여 무엇이나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구석에 박힌 낟알이라도 기어이 찾아냅니다. 사람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먹이도 기어이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이를 통하여 매사에 소홀히 하지 말고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닭은 많은 것을 나누어 줍니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모이를 먹고도 매우 아름다운 알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다른 새들은 번식기에 맞추어 알을 낳습니다. 그리하여 깨어났을 때에 물어다 줄 곤충들이 많이 나올 때를 맞추어 알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닭은 먹는 만큼 언제나 알을 낳아줍니다.

사람들은 닭으로부터 얻는 것이 매우 많습니다. 닭이 있는 마당에는 벌레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풀도 함부로 자라지 못합니다. 닭들이 모두 쪼아 먹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먹이를 찾기 위해 흙을 긁어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정갈한 마당을 유지시켜 줍니다.

우리 선조들이 닭을 그려 붙이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한데에는 이처럼 생각할 바가 많기 때문입니다.

세화에 많이 등장하는 닭 그림에는 옥계(玉鷄)라고도 불리는 백계(白鷄), 금빛을 풍기는 금계(金鷄), 하늘에서 불로초를 먹고 산다는 천계(天鷄) 등 그 종류도 매우 많습니다. 그만큼 닭의 위치를 고심했다는 증거입니다.

김알지 신화에는 상서로움을 뜻하는 백계가 등장합니다. 이른 새벽 간밤의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존재로서 눈부시게 희고 위엄 있는 닭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천계가 울면 땅 위의 모든 닭들이 따라 운다고 보았습니다. 이 소리는 바로 세상이 움직이는 첫신호였습니다. 천계는 불로초를 먹으며 그 품격을 유지하기에 더욱 사람들의 마음속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는 닭들이 최근 조류독감으로 변을 많이 당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모두가 건강한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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