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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변방(邊方)의 아나키스트

기사전송 2017-04-09, 21: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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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그의 사무실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서 사무실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걸려 있거나 내려놓은 유화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곁에 놓인 회의용 테이블 위에는 크고 작은 도기들이 놓여 있었다. “이거 나름 이름 있는 작가들이 그리거나 만든 작품들인데, 정리를 못해서 이 모양입니다”라고 그는 자리를 권했다. 도무지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알 수조차 없는 공간임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걸 눈치라도 차린 걸까. “건설 관련된 일을 하지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교직에 있다가 나와서 우여곡절 끝에 만난 일인데, 밥은 먹고 삽니다.” 밥은 먹고 사는 김교정은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외로웠나 보다. 반백을 넘어선 짧지 않은 그의 삶을 크로키(croquis)처럼 빠르게 듣고 이해하는 시간이 지겹지만은 않았다.

그 날, 공식적으로는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회와 ‘사라온 마을’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위안부 관련 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인 이용수 할머니와 동행해서 둘러 보기 위한 만남이었지만, 정작 궁금했던 것은 이번 전시 장소가 미술관이 아니라 군청과 경찰서 두 군데에서 열리게 된 배경이었다. 군청은 그나마 대민 지원 업무가 많은지라 친서민적인 공간으로 여길 수 있으니 작품들을 전시하고 관람하는 것이 큰 무리가 없을지 모르지만, 경찰서는 친화적인 캠페인을 통해서 많이 유화(儒化)되었다고는 하나 국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업무로 인해서 오히려 치안이나 보안을 중시하게 되어 경직된 대표적인 곳인데, 그곳에서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군위군청에는 한 남자가 마중 나와 있었다. 김교정의 친구라고 소개받은 조형 작가 이병준을 분명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낯설지가 않았는데, 아마도 두 남자가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짐작해 본다. 십년도 넘은 똑같은 차량을 보는 것도 익숙했지만, 대구 2.28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과 본인의 작품에 대한 멈추지 않는 수다에 가까운 세세한 설명조차 너무나 닮은 두 중년의 남자, 열정이었다. 그들에게는 ‘사회적 약속을 기반으로 한 정의’가 동력으로 소요되는 거침없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무정부주의를 아나키즘(anarchism)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와는 의미를 달리한다. 아나키(anarchy)는 지배자가 없는 사회를 의미하지만, 그건 정부만이 아니라 종교, 자본 등의 모든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더욱 포괄적인 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사에서 아나키스트들은 국내에서도 많이 활동했지만, 정치적인 경향이 강해서 본래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지만, 어쨌든 두 남자는 스스로 만든 자본과 재능으로 사회에 무조건적인 기부가 몸에 배인 천부적인 아나키스트에 가까웠다.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에 손 내밀지 않고 우리 힘으로 위안부 할머니의 한도 풀어 드리고 잘못된 거 바로 잡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힘닿는 데까지 해볼 겁니다.”라고 말하는 두 남자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미 무상으로 지역 곳곳에 많은 작품들을 기증하거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활동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빛이 되어 불 밝혔던 곳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변방(邊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관심을 처음으로 가진 변방이 위안부였다. 정부에서조차 적극적인 지원은 고사하고, 한.일 양국 간의 마찰과 갈등의 원인이기라도 된 양 흐지부지한 대응을 하는데 그치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피해자를 배제하고 진행하는 것도 모자라 위안부 협상을 타결하는데 앞장서서 지원금 수령을 대행(?)하는 친절함을 가장한 만행을 저질러 피해 할머니들에게 두 번의 상처를 주고 말았던 것이 그들이 첫 번째 과제로 택한 이유가 되었다.

당국이나 지자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두 남자의 행적이 어찌 달갑기만 하겠냐마는 피해자들 대부분이 고령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 시점에서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위상과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길임을 반드시 인지해야만 할 것이다. 일본은 세계적인 회의석상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끝없이 독도와 위안부에 관한 터무니없는 주장을 쉬지 않고 이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변방의 완장도 없는 의병장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대구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재치 있는 입담과 애창곡을 부르며 우리 모두를 웃게도 했다가 위안부 시절의 잔인하고 혹독한 피해 사실들을 얘기하는 대목에선 눈물짓게도 했다. 구순에 가까운 연세에도 뚜렷한 기억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반면, 어린 나이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치 어제 일처럼 가슴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서러움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손가락엔 지문이 없다. 어린나이에 타국으로 강제 이송되어 그들의 요구를 거부할 때마다 구타는 물론이고 잦은 전기고문으로 인해 지문이 모두 지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타계한 그녀들과 남은 그녀들에게 조국은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가슴 속 지문조차 지워버리는 상처를 더하지 말아야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늘어나 변방의 가려진 진실과 어둠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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