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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대한 독립 만세

기사전송 2017-04-30, 21: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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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뮤지컬 ‘영웅’을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워낙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을 좋아하는 취향을 잘 알고 있는 그 분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를 전한다. 대구가 뮤지컬 도시로서의 면모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고, 음향기술과 함께 공연장마다 최첨단의 장비들이 도입되어 불과 십여 년 전과 비교해 보더라도 현격하게 차이가 두드러져서 매번 대형 공연 때마다 매진이 되는 진풍경이 이제는 새롭지도 않을 만큼 예매를 서둘러야 함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수요가 공급의 질을 결정한다’는 불변의 진리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님은 분명한 듯하다.

뮤지컬 ‘명성왕후’에 이은 윤호진 연출가의 두 번째 뮤지컬 ‘영웅’은 필연적인 제작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안중근 기념 사업회에서 실무를 맡았던 한 청년이 제안했을 당시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했으나, 역사적 사실이 명성왕후의 시해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과 함께 안중근의사가 재판과정에서 밝힌 15가지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 중에서 으뜸으로 꼽았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는 자연스럽게 차기작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더 소름 돋는 이유는 처음에 안중근의사의 뮤지컬 제작을 제안했던 그 청년이 갑자기 고인이 되어버린 사건이었다. 이번 뮤지컬에 캐스팅된 배우들 간에 그가 의사의 뜻을 전하러 온 전령(傳令)이 아니었을까 하는 후문이 돌 정도로 극적인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막이 오르면, 자작나무 숲에 모인 11인의 독립투사들이 단지(斷指)동맹을 하는 장면이 역동적으로 그려지고, ‘대한독립’이라고 쓰인 태극기를 펼치면서 장렬한 모습을 보여주며 한 순간에 그들과 함께 시간과 공간의 동질감에 휩싸인 채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뮤지컬 ‘영웅’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최재형, 조도선, 우덕순, 유동하 등 대부분 실존인물들이고 명성황후와 안중근 의사의 ‘끈’을 이어주는 마지막 궁녀 ‘설희’와 안중근 의사의 친구인 만두가게 주인 왕웨이의 16살 난 여동생 ‘링링’은 가상의 인물이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은 검증과 함께 사실을 기반으로 한 왜곡된 시선과 연출의도에 따라 찬반이 현격하게 나누어지는 ‘위험인자’를 품고 있어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함경도 출신의 조도선은 실제로는 세탁소 주인이지만, 여기선 명사수로 등장하고, 최재형은 대동공보사의 사장으로 안중근 의사 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군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실제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행의 정보를 건넨 인물이기도 하고,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두 등장인물만 보더라도 진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는 극의 완성도를 높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고,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분장실을 벗어난 배우 장기용을 만나 차를 한잔 나누면서 공연과 관련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현실에서 만난 그는 어려운 후배 연기자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사람 잘 믿는 성격 탓에 물질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음을 토로할 때의 표정과는 달리 대학로 연극 이야기를 할 때는 예순이 넘은 나이임에도 그는 청년 배우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여주어, 어쩌면 그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연기 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더라면 그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빙의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초기 공연에서 뮤지컬 ‘영웅’이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노래를 주고받는 장면으로 인해 친일작품으로 내몰린 수모를 겪었던 부분을 아쉬워했다. 그 두곡이 너무 좋다는 그의 말은 친일로 오해받기 쉬웠으나, 그의 눈빛을 보고서야 그런 의도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의 의도는 제작자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이지만, 작품의 의도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면 과감한 첨삭 결정을 내릴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제작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결국 그 장면과 노래는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원래의 연출 의도는 시대적 착오로 인해 원수로 만났으나, 두 사람은 한일 양국의 영웅이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을 남겨두고 싶었다고는 하나, 필자는 이 부분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국가의 잘못된 호전적(好戰的)인 정책을 바로잡을 우두머리 격에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고, 그는 국가의 명을 따르는 영웅이 아니라 명을 내리는 자였기 때문에 자주 독립의 필연 의지를 가진 안중근 의사와는 도저히 비교할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두 곡을 다시는 들어볼 기회가 없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흔히 ‘국뽕’이건 어쨌든 그 장면이 사라진 부분에 대해서는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극 중에는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독립군들의 연락책을 맡아 활동하게 되는 17살 소년 유동하가 등장하는데, 너무 어린 나이여서 위험한 일을 도저히 맡길 수 없다고 만류하는 안중근 의사에게 “나라 잃은 젊은이는 철이 빨리 드는 법이지요.” 명대사를 남긴다. 우리나라의 안보와 정치상황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주변국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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