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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독(毒)짓는 어린이

기사전송 2017-05-07, 20: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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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아마 가족과 함께 하는 어린이, 어버이날 등 기념일들이 모여 있는 탓에 그리 명명했으리라. 올해로 95회째를 맞은 이 두 기념일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의미가 퇴색되어 성가신 날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린이날은 1923년 방정환을 중심으로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가 1927년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한 이후 광복이 되고 나서부터 매년 5월 5일로 정해진 이후 1961년에 ‘아동복지법’이 제정되고 공포되면서 5월 5일로 정해지고 1973년에 기념일로, 1975년부터 정식으로 공휴일로 제정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공휴일은 아니지만, 어버이날도 1956년 5월 8일에 ‘어머니 날’에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서 변경, 지정되었다.

어린이라는 말이 쓰여 지기 전까지는 그저 미숙한 ‘것’이나 ‘놈’에 불과했던 아이들의 존엄이 여러 뜻있는 지사들에 의해서 격상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은 기본이고 부모가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모시는 상황이라고 토로하는 노인층의 불만도 상당하다. 손주를 나무랄 일이 있더라도 며느리의 눈치를 보느라 허허 웃음 지어야 한다고 노인을 상대로 한 강좌에서 행동지침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야 자녀들과 원수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고도 하고 죽는 날까지 재산을 남겨둬야 자손들에게 ‘홀대’받지 않는다고도 한다. 나름대로 현명한 처사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한편 여성가족부에서는 2009년부터 매월 셋째 주 수요일을 ‘패밀리 데이(Family day)’로 지정?운영하던 캠페인을 2010년부터 한글이름 공모전을 통해 ‘가족 사랑의 날’로 변경해 매주 수요일로 확산해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직계가족의 의미에서 더 나아가 이렇게 건전한 에너지가 확산되어 소외된 독거노인이나 아이들에게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년 어버이날과 어린이날만 되면 상대적으로 더 우울한 이들이 적지 않음을 부정할 수 없다.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만큼이나 잘 알려진 또 다른 단편 ‘독짓는 늙은이’를 읽다가 주인공 송영감보다 가마 곁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노심초사하는 아들 ‘당손이’의 안부가 걱정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가마 굽는 일을 도와주던 조수와 아내가 함께 집을 떠난 후 분노와 좌절로 도무지 독을 빚어낼 수 없었던 송영감이 어린 아들과 함께 겨울을 나야 하는 처절한 생계에 대한 번뇌와 타협하는 심적 갈등이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이 그나마 현실적으로 와 닿는 이유는 독이 백 개는 되어야 가마를 지필 수 있는데, 모자라는 독의 수를 원수나 다름없는 그의 조수가 빚어두었던 독으로 채우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송영감에 대한 장인으로서의 존경이 무너지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아들을 향한 그의 애정과 책임감에 비로소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이웃 앵두나무집 할머니의 주선으로 아들의 입양이 결정되고 평생을 바친 가마 곁에서 죽음을 맞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가장들의 비굴함에 대한 명분에 공감을 한다.

과거에는 어른들의 패악이나 모순들을 감추기가 용이했다. 옆집이고 뒷집에 거주하는 이웃들과 공동의 노동을 통한 결집이 쉬운 것도 이유일 수 있지만,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남존여비의 실천은 토를 달수조차 없을 만큼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위험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어른들은 어른이 아닌 어린 세태들을 보며 ‘요즘 아이들은~’ 식의 우려와 부정적인 평을 해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의 범람 속에 내 부모의 잘못된 독을 접할 수 있고, 하물며 언제든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문명의 이기는 공포 수준이다. 어른들이 더욱 더 행동거지들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부모와의 전화통화 녹취는 물론이고 이를 내세워 그들의 영악한 요구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만큼 그들의 사이버 공간은 정교하고 방대하다. 아버지의 잘못된 ‘독’을 밀고할 수 있는 공간에서 우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보았노라고 경악하는 사람들에게 평소 처신을 잘하지 왜 그랬냐고 나무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근본적인 문제는 어린이들이 어른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예전엔 정도가 지나치다 싶은 체벌에도 ‘지나고 보면 사랑과 관심이었노라.’고 회고하곤 했지만, 지금은 단지 가해자가 단지 분에 못 이겨 자신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묘사된 글들을 보며 우려가 되기도 한다.

세상이 변하고 세태가 변한다면 이를 인정하고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소통하지 않고 단순히 세대차이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바르고 고운 말을 써야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아이들이 비로소 그들의 잘못된 ‘공모’를 깨닫고 어른들의 깊은 ‘속뜻’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길 수 있다. 욕설이 난무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소리치는 어른들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말로, 혹은 행동으로 독(毒)을 짓는다. 그 독은 타인을 해치는데 그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을 해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그들의 가마에 희망이라는 맑고 투명한 유약을 바른 미래를 구워낼 수 있게 우리 어른들이 온 마음을 다해 힘을 써야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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