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승인 2017.05.0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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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장
예임 산악회에서 ‘부처님오신 날’에 원주에 있는 치악산에 갔다. 대구에서 출발할 당시 차량은 많지 않아 밀리지 않았지만 원주에서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부터 차는 지체하더니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전국의 도로는 사람 수 만큼 많은 차량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우리나라 산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산봉우리는 비로봉이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큰 산 최고봉은 불교의 비로자나불에서 유래한 비로봉(毘盧峰)이 대부분이다.

성호 이익(李瀷)은 고려 말기의 학자 이곡(李穀)이 쓴 장안사 비문에 ‘금강산의 빼어난 경치는 천하에 이름이 났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불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화엄경에 동북쪽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는데, 법성보살이 1만 2천 보살과 더불어 항상 지혜를 설법하였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고 말한다.

1만 2천 보살의 숫자를 그대로, 금강산에도 1만 2천 봉우리가 있다고 똑같이 생각하였다. 이익은 금강산을 유람한 적이 있는데 봉우리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어찌 1만 2천 봉우리에 이를 수야 있겠는가 하였다.

치악산의 최고봉은 비로봉(飛蘆峰)이다. 다른 산들의 최고 봉우리와는 다른 ‘날 비(飛)’이다. 아마 봉우리가 새가 날개 치며 날아가는 형상인 모양이다.

‘한 나그네가 과거 길에 올라 적악산 오솔길을 지나는데 구렁이에 휘감긴 꿩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나그네는 구렁이를 죽이고 꿩을 구해 주고 산길을 갔다. 어느 듯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묵을 곳을 찼던 나그네는 불빛이 비치는 초가삼간에서 소복한 여인의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 밤중에 여인은 구렁이로 변하여 낮에 죽은 남편 구렁이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였다. 나그네의 몸을 칭칭 휘감고 만약 동이 틀 때까지 상원사의 종이 세 번 울리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였다. 삼경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상원사의 종이 세 번 울렸다. 구렁이의 약속대로 나그네는 풀려났다. 새벽길을 재촉하여 나섰던 나그네는 상원사의 종각 밑에서 낮에 살려 주었던 꿩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그네는 시체를 거두어 고이 묻어주었다’

이후 적악산은 ‘꿩 치(雉)’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중요한 내용은 ‘보은의 꿩’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방식일 듯하다. 불쌍함과 동정심의 측은지심, 잘못됨을 알고도 모른 척 할 수 없는 수오지심,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 겸손하면서도 양보하는 겸양지심을 이야기로 만들어 길이 전하고자 하는 조상의 지혜로운 바람은 아니었을까?

예임 산악회에서 치악산 비로봉을 올라가는 길은 구룡사 계곡이었다. 관광객, 불교신자, 산악인, 차량들이 뒤엉켜 구룡사 계곡은 인산인해였다.

절 이름은 의외로 구룡사(龜龍寺)였다. 유래를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홉 마리 용의 전설과 관련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는데 절이 퇴락하는 바람에 절터가 거북이 모양의 돌이 있던 장소에 지었다 하여 구룡사(龜龍寺)로 바뀌게 되었단다. 같이 산행하던 선배가 구(龜)를 세 가지 의미로 설명하였다. 땅 이름일 경우에는 ‘구(龜)’로 읽고, 거북이는 ‘귀(龜)’로 읽으며, 터진다고 할 때는 ‘균(龜)’으로 읽는다는 것이다.

구룡사는 ‘부처님오신 날’ 행사로 온 산이 떠나갈 듯이 시끄럽고, 주변의 산길도 행락객으로 붐벼서 정신이 아뜩하였다.

문득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법문하던 성철스님이 생각났다. 성철스님은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과의 대담에서 ‘인간은 철저히 고독해 보아야만 본질 훈련을 통해서 생명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다. 마음속에 자기 확인의 고요를 잃고서는 자기 면목은 보여 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자신이 되었을 때 하나의 생명체에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주 소중한 말씀이다. 철저히 고독해 보아야 한다는 것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의 느낌을 가져야 본질 훈련이 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이 되었을 때….’라는 말이 오늘따라 더욱 새롭다.

성철스님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하는 법어를 되뇌며, 치악산을 오르면서 물이 떨어지는 세렴폭포까지 갔다. 속인에게도 ‘산은 산, 물은 물’이기를 기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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