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의 이면(裏面)
인정의 이면(裏面)
  • 승인 2017.06.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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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어쩌면 핑계일는지도 모른다. 잠을 좀 줄이고, 조금만 더 부지런히 글을 쓰고 조금만 더 인문학 강의를 열심히 뛰어 다니면, 아쉬운 대로 먹고 사는 일이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조금만’이었다. 조금만 글을 더 쓰는 것이 알량한 자존심에 쉽지 않았고, 조금만 더 열심히 뛰어 다니는 것이 힘이 들다 보니, 늘 생업에 대한 궁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인이 동업을 제안했고, 그의 사업 수완과 경력을 믿고 함께 시작했던 조그만 카페가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두 사람의 생업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데 공감했고 그가 떠난 후 혼자 맡은 지 어느덧 올해로 3년이 접어 들었다.

객관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그에게 카페를 넘기고 장사 경험이 전혀 없는 필자가 떠나는 게 맞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카페의 상호가 ‘비가 내리는 바다, 그리고 다시 내릴 비’라는 의미인 ‘비 바다 비’는 필자의 작품 제목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비’가 많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비는 ‘사람’이다. 바다는 우주의 일부이고 세상일 수도 있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 바다를 채울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이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가끔 소주 한 잔을 마시게 되면 그 순간부터 이후의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할 만큼 체질적으로 술을 해독하는 능력을 타고 나지 못했다. 한때 술은 마실수록 는다는 말을 믿고, 작정하고 친한 선배와 술을 마시고 네 시간동안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했으며, 그 선배는 부모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채 죽을죄라도 지은 양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전했다. 그런 필자가 취미삼아 가진 조그만 재주로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 카페를 궁여지책으로 열었지만, 술에 취한 이들과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주위 분들은 3개월 내로 반드시 문을 닫을 거라고 했다.

비록 애주가는 아니지만, 음주에 대한 고민은 누구보다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특히 다양한 술버릇들을 접하면서 그들의 직업과 관련된 삶의 ‘엿보기’가 문학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것임을 애써 위로 삼아 왔던 것이 오히려 자양분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음주를 한 이들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부분과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명확해 진 것은 분명하다. 가령 술을 마시면 청각이 둔해짐으로 본인의 목소리가 커지는 부분과 걸음걸이가 흐트러지는 부분은 이해가 되지만, 쓸모없는 호기로 타인에게 시비를 걸고 느닷없는 반말과 비속어를 난발하는 작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후자의 경우 필자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보다는 조속한 귀가를 권하거나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 강제 퇴장을 요구한다.

카페 입구를 들어서면 ‘이곳은 문학과 음악과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을 꿈꾸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라고 적혀있다. 문학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문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적어 둔 글귀다. 과거에는 동네 식당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필자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님이 주인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재화 혹은 서비스, 그 이상을 요구해서도 안 될 뿐더러 주인은 이를 수용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요즘 말로 ‘갑질’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감정을 인정(人情)이라고 한다. 이는 서로가 예의를 다할 때 가능한 부분이다. 식당 주인은 도대체 무슨 업보로 그 많은 왕(?)들을 모셔야 한단 말인가. 인정이 깊어지면 의리(義理)가 형성된다. 의리의 천적이 무엇인가. 배신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고 그 부분에 대해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의리라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상대가 잘못된 언행을 하더라도 무조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충언과 직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끼리만 도리를 다하고 우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무시하고 괄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더 많은 우리가 만들어지고 그 우리들이 바다가 되었을 때 더 많은 비가 내릴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의리라는 것이다. 그 의리의 기본이 되는 것이 인정(人情)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되바라진 사람을 보면 인정머리가 없다고 한다. 그런 이들이 의리가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런 인정머리 없는 사람을 평가하는 나 자신이 이기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수가 많다. ‘내’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내’가 ‘그’에게 그동안 어떻게 했는데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건가라는 식이다. 알고 보면 그런 ‘나’를 도와주는 것이 다른 누군가를 ‘해’할 수도 있는 일이 너무도 많다. 나를 도와주면 인정이 넘치는 의리 있는 사람이고 나를 돕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는 기준이 허물어져야 한다. 악한 자가 그런 마음을 품고 그들의 의리 있는 세력들을 만들어갈 것을 생각해보면 상상으로도 두렵기만 하다. 이렇듯 인정과 의리도 정의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나부터 바른 빗줄기 되어 바다로 먼저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럼 더 맑고 투명한 빗줄기들이 거세게 내려 맑고 푸른 바다가 될 수 있겠기에 말이다. 단 하루라도 아픈 바다 말고 푸르고 맑은 바다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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