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용에 대하여
스마트폰 사용에 대하여
  • 승인 2017.06.06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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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영국인 청년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친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영어를 좀 더 효율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나에게, 그와의 대화는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영어는 보다 친근감을 갖게 했고, 한 박자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할까. 나(I)와 너(You)로 대표되는 호칭이 좋았고, 칭찬과 위로와 공감의 표현에 능통한 그의 대화는 상대방의 실수를 가볍게 하는 마력과 같은 효능이 있었다.

회화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팝송 가사 또는 미국 드라마에 자주 사용되는 문구를 인용하거나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가며 대화를 시도했고, 그는 잘못 사용된 단어에 대해 지적을 해주는 등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또한 그는 비슷한 문장과 짧고 간단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여 내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었다. 그러니 영어에 있어서는 그가 리더가 되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에서는 나이가 훌쩍 많은 내가 조언을 해주는 상생의 관계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영국인 청년의 절도 있는 스마트폰 사용에 있었다.

아침에 카카오톡이나 보이스톡으로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 등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와 직장에 나간다는 인사를 하고나면, 점심시간이 되기까지는 내가 남긴 메시지를 결코 열어보지 않았다. 점심시간 역시 몇 마디 대화만 하고, 퇴근시간이 되기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퇴근 후 귀가를 하고나면 비로소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 환경 문제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내용도 자연스런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때로는 우리나라와 영국 사이 8시간이라는 시차가 나를 몹시 피곤하게 했으나, 그래도 좋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 방식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왜 나의 마지막 문자나 질문을 몇 시간째 읽어보지도 않는 걸까? 관심이 없다는 뜻일까? 그러나 그런 일이 일정 기간 반복되다보니 그의 생활방식 또는 직장에서의 규범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다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2시간쯤 지났을 무렵 기대하지 않던 메시지가 도착했다. 깜짝 놀라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고 물었는데, 30분간 휴식시간(break time)을 갖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30분을 넘기지 않고 대화는 중단됐다.

그것이 그 청년만의 철칙인지, 모두가 다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못했다. 또는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우리와 다른 문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싶었다. 일을 하는 시간에 대답을 기다렸던 것이, 오히려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스마트폰을 거의 잠시도 손에서 떼놓지 못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일을 하는 중에도 통화와 문자 주고받기를 어려워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업무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등교나 출근 또는 외출하는 길에 스마트폰을 챙겨나가지 못했다면 종일토록 불안과 근심이 떠나지 않는 금단현상이 생길 정도로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각종 회의장이나 세미나, 강의실 등 행사장에서 귀로는 강의를 들으면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모습은 썩 좋게 보기가 어렵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는 승객들도 하나 같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현상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사용할 일이 없는데도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이 어쩐지 뒤떨어지는 것 같아 지나간 대화 내용이라도 다시 읽어보는 웃지 못 할 사례도 있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매우 급하고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특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와 함께 시간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도 절도 있는 스마트폰 사용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지, 어려운 일인 줄을 알면서도 감히 제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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