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Archive)의 가치
기록문학(Archive)의 가치
  • 승인 2017.06.1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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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대학원 아동문
학과 강사
언제부터인가 출판계나 영화 등에서 기록문학(아카이브:Archive)이 대중의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한 ‘7번 방의 선물’이 그렇고 ‘변호인’이 그렇다. 요즈음 영화관에서는 아예 주연 배우가 달리 필요 없이 그 사람이 살았던 삶의 영상들을 조합하여 본인이 주연배우가 되는 실화가 상영되고 있다. 또한, ‘윤동주’ 영화를 보면 우리 모두가 ‘윤동주’처럼 거룩하게 살고 싶어진다. 허구가 아닌 실제 이야기가 가진 힘, 진정성과 진실성의 힘 때문이리라. 하지만 일제 치하에서 친일의 글을 썼다던 이광수나 이원수! 그런 분들 모습에서 나를 따로 걷어낼 수 없다. 나의 보호색을 찾아 편한 쪽으로 마음 쏠리는 ‘자동 순응성 원리’를 벗어나기가 그리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독도문제’나 ‘세월호’ 문제,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앞에 항상 가슴 묵직한 사명감을 느끼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도덕적 의무(noblesse oblige)에서일까. 작가의 양심에서일까?

그런 묵직한 사회적 주제가 아니더라도 개인 삶에 대한 기록문학은 개인에서 비롯된 부분적 쓰기의 결과물이지만 역사를 읽고 사회를 읽고 인간을 사랑하는 데 참으로 소중한 자료다. 마서 밸러드가 쓴 ‘산파 일기’는 27년간 800명의 아이를 받아내며 기록한 일기다. 그 일기를 로렐 대처 울리히가 번역하여 1991년에 풀리처상을 받고, 마서 밸러드 연구로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되었다. 의의는 17세기 미국 여성들의 사라진 삶을 밝혀내었다는 데 있다. ‘안네의 일기’가 아니더라도 갑자기 죽은 오빠가 살아있었음을 기억하고 싶어 안미자는 ‘오빠 일기’를 출간했다. 초등학교 때 오빠가 쓴 일기와 그즈음의 사진을 붙여 만든 “사진 일기” 기록물이다. 명지대 디지털 아카이빙 연구소는 ‘당신의 5월 12일을 보관해 드립니다’는 문구로 기록을 수집했다. 유치원생의 그림일기, 할아버지의 전화 녹음, 주부의 사진, 중고생의 낙서, 입영 군인의 엄마에게 보낸 소포 속 쪽지 등을 받아 동시대에 전혀 다른 사회, 경제 배경으로 살았던 삶을 모아 사회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기록문학으로 정리하였다.

최현숙은 “내 살아온 이야기를 다 쓰면 세 권은 족히 나온다”는 할머니들의 구술을 받아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를 출간했다. ‘대구 수목원’ 뒤에 있는 ‘마비정’에도 어르신들의 옛날 사진을 전시해둔 아카이브 공간이 있고 부산 ‘대천 마을’에서도 2013년에 사진 170점을 모아 아카이브 사진전을 연 바 있다. 내 삶(경험, 추억, 이야기)을 풀어내는 동안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목표가 생긴다. 즉, 내 삶을 최상의 예술로 만드는 자기 경영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방법으로 풀어낼지는 간단하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천천히, 하루 한 두 페이지 정도 쓰면 기억력 회복에도 좋은 훈련이 된다. 유춘하 할아버지의 ‘쑥갓 꽃을 그렸어’ 책은 그림을 그리며 시작된다. “내가 구십이라니, 어마어마하다. 이제는 잘 걷지도 못해. 누워서 쉬는 것이 제일 편해. 우리 셋째는 성가시다. 자꾸 그림을 그리자 해. 그림이라곤 전혀 모르는데.” 딸의 성화에 그림을 그려 집안에 붙여 손주들이 구경하는 그림이 삽화로 그려져 있는 책이다. 말한 것을 적어도 시가 된다.

한녀름 땡볕 아래서/이래 농사질 때는/콩 한 쪽도 남 주기 아깝다가도/선선한 바람 불고/ 이것저것 다 거다 놓으면/모처럼 찾아오는 일가붙이들/콩 한 됫박이라도/챙겨주는 재미가 쏠쏠하니더/그 재미로 이래 안 하니껴?

장동이 시집 ‘엄마 몰래’ 중 ‘김정희 할매’ 전문이다. 사진을 편집하여 앨범 만들어주는 사이트에 맡겨도 좋고 구글 포토앨범에 사진첩으로 만들어도 좋다. 박경선은 41년간 교단에서 주고받은 제자들과의 편지를 주제별로 엮어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로 출간했다.

신혜은은 “6·25 때 헤어진 아버지를 그리며 살아오신 어머님께, 그리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며 부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대신 적어 ‘조개맨들’책으로 출간했다. ‘할머니 엄마’ 책은 “어떤 장면을 그릴 땐 울고, 어떤 장면에선 웃으며 할머니와 함께한 기억으로 책을 지었어요. 우리 가족을 위해 평생 헌신해 주신 박무연 할머니를 소개할 수 있어 한없이 기쁘답니다. 할머니 사랑해요” 하며 이지은이 책머리에 썼다. 딸 대신 손주를 거두던 할머니의 시간을 돌봄 받은 손주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런 기록들로 할머니의 수고와 손주 사랑이 ‘산파 일기’처럼 세상에 남으리라.

어쨌든 요즘은 화려한 성공담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저자의 아픈 이야기를 통해 위로 받고 싶은 독자들이 많아졌다. 그러니만큼 소소한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따뜻하고 진실된 내용의 원고가 출판사 관계자의 호감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 좀 더 알고 싶으면 6월 16일. 10시, 서부도서관에서 ‘집밥 같은 기록문학으로 행복 쌓기’ 강의를 들어도 된다. 추억이 재편집되면서 기분이 즐거워지고 엔돌핀 분비로 육체가 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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