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부터의 도주, 문행(文行)
일상으로부터의 도주, 문행(文行)
  • 승인 2017.06.2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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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20년이 넘었으니, 실로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다. 세월이 그리도 흐르는 동안 넓어진 좌석 공간, 오디오까지 다채널 서비스로 등받이에 장착된 내장 스피커를 통해 감상할 수 있었다. 버스 한번 타고 호들갑을 부린다고 핀잔을 받을 지라도 자랑하고 싶을 만큼 훌륭하다. 동대구역 환승센터를 출발한 버스가 서울에 도착하는데 약 네 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예나 지금이나 소요시간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예전엔 동대구역 주변에 얼마나 알 수 없는 악취와 매연에 눈살을 찌푸렸던가. 환승센터 건립할 당시엔 기존 터미널 공간이 흉물로 남을까 하는 우려와 무엇보다도 대형백화점의 상술과 이에 길들여진 상혼을 집어삼키고 우뚝 선 초대형 불가사리를 바라보는 것 같아서 ? 실로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아직도 개운하진 않다. - 마음이 유쾌하진 않았던 탓에 가능하면 기차나 승용차를 타고 움직였지만, 오히려 비좁은 KTX의 반값 정도에 그 이상의 호사를 누렸으니 마음이 누그러진다.

문학기행이라고 하면 대개 이름난 작가들의 생가를 방문한다든지, 문학관을 다니며 집필의욕을 돋우기 위한 여행을 의미한다. 요즘은 기록할 방법이 다양해져서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후 돌아와서 편집하고 글을 남기기도 한다. 거기에 반해서 필자에게 문행은 스스로 생각해봐도 미개하다 못해 답답하기조차 하다. 우선 모든 연락을 단절하고 숙식이 해결되는 문학관이나 사찰 등지에서 기거하며 아예 일정기간 동안 글만 쓰다가 돌아온다.

혹자는 그런 식으로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쓸 거라면 굳이 먼 곳으로 떠날 이유가 없지 않냐 는 지적을 한다. 맞는 말이다. 아니 필자에겐 틀린 말이다.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은 글을 쓰는 이를 둘러싼 공간적인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다. 이제 막 글을 쓰려는 데 불러내는 친구들을 비롯해서, 밤새도록 글을 쓰고 낮에 겨우 잠을 자 볼라치면 걸려오는 전화, 불쑥 울려대는 아파트 내 안내방송 등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물론 그런 모든 방해 요인들이 글의 소재가 되어주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대부분이 가벼운 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고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찰이 부족한데 성찰이 될 리 만무하고 그런 상태에서 쓴 글에 어떤 가치도 기대할 수 없다.

버스가 김천분기점을 지날 무렵에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어느덧 제법 굵은 빗줄기가 차창에 부딪히며 빗살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가뭄이 아직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우나를 비롯한 서비스업종의 영업시간 변경 등의 절수 정책을 내놓는 현 시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밖으로 갈라진 논과 밭이 담배 핀 뒷맛처럼 텁텁하던 차에 상쾌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펼쳤다.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푸른 산들이 휙 지나가고,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도 휙 지나가기에 성급할지 몰라도 이번 글짓기 여행은 기분 좋은 예감도 든다.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은 딱히 진정성이 결여되지 않았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감할 수 있는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충분히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혹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게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나 절대 내게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기대와 우려가 밑그림이 된다. 이러한 것들이 반드시 좋은 글의 조건이 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좋은 글들은 대부분은 이런 식의 공통된 요소들이 존재한다.

공기놀이를 해보자/몽골의 사막에 먼지바람 휘몰아치는/이 넓은 대지에서/바위로 공기놀이를 해보자//가슴에 멍이 들어 피멍이 들어/하늘을 갈라놓을 슬픔을 내기 걸어/너와 나 단 둘이서/바위로 공기놀이를 해보자//하나의 바위를 안고 속을 뒤집고/휘청거릴 바람으로 세상을 속이고/비열한 웃음 하나 남겨두고서//공기놀이를 해보자/두개의 바위를 안고 속을 보이고/ 비뚤어진 자만으로 냉소를 보이며/다 아는 눈물 한 방울 흘려두고서//공기놀이를 해보자/세 개의 바위를 안고 속을 헤집고/나만 아는 비장한 각오를 하여/네게 지지 않을 각오를 다지며//공기놀이를 해보자/네 개의 바위를 안고 속을 채우며/하나를 던져 셋을 받는 약속으로/멀리 떨어진 바위 하나를 기억하며//공기놀이를 해보자/다섯 개의 바위를 안고 속을 비우며/뿔뿔이 흩어진 넷을 추스르며/기억조차 나지 않는 하나를 더듬으며//공기놀이를 해보자/다섯 개의 바위를 우주에 모두 던져/한 번에 받아내야만 하는/힘겹고 무거운 공기놀이를 해보자.<공기놀이. 전문. 2011>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인의 아이가 공기놀이를 하다가 눈을 다쳤다. 공기 중 하나가 분리되며 그 안에 미세한 쇠구슬들이 튀면서 생긴 사고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일이 일어난 거다. 이를 제조한 부산에 소재한 이 업체는 찰흙이나 미술 교구 등을 주로 초등학교에 납품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으로 꽤 많이 알려진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제조한 교구들의 목록을 보니, 그야말로 추억이 깃든 우수한 제품들도 꽤 많았다. 혹시 공기와 관련한 다른 사고가 있었는지 찾아보니, 그 회사 제품 중 유일하게 공기놀이 제품만 여기저기 사고 사연들이 있었다. 왜 개선되지 못했을까.

그 업체는 업체를 둘러싼 관계로부터,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용기가 없었으리라 생각하면 억측일까. 우리 아이들의 공기놀이 완구를 안전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정성껏 만들어낼 마음의 여유와 관심이 부족했을 것이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라 누구든 지쳐있다면, 필자처럼 잠시라도 일상으로부터 도망쳐 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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