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행정이 중요하다
인사행정이 중요하다
  • 승인 2017.07.0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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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길거리 책방이 생각난다. 도심 건물 앞 탁 트인 도로가에 큰 돗자리를 깔고 각종 책을 펼쳐놓은 난전이다. 새 책들도 더러 보이지만 비교적 깨끗한 헌 책들이다. 문학서를 비롯하여 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요즘 지하도에서 좌판에 여러 옷가지를 섞어놓고 동일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처럼 어지럽게 늘부러져 있는 책들은 종류에 관계없이 값도 비슷했다. 젊은 날 길거리 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사들인 몇몇 책가지가 내 글방 책꽂이에 꽂혀있다. 세로 인쇄체인 책들은 누렇게 변질되어 조심스럽게 책장을 펼치지 않으면 찢어지거나 마른 잎처럼 스르르 부서지기도 한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책과 더불어 살아 온 삶이다. 모아 온 옛 책들을 보면 질곡의 세월이 그림 보듯 다가온다. 뚜렷한 목표 없이 방황하던 그때, 나는 길거리 책 난전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주로 사회과학에 관한 책들을 많이 접한 것 같다. 그런 인연으로 공무원의 길로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주경야독 시절, 행정학 전공 가운데서 특히 관심을 가진 분야는 인사행정이었다. 조직은 사람에 의해 관리된다는 기본적 원칙 때문이다. 공무원은 공개경쟁시험에 의해 선발되는 것이 옳다고만 생각했는데 정부의 주요 고위직이 인사권자의 자의로 채용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엽관주의와 실적주의 인사제도에 관해 교수와 심도 있는 토론도 많이 했다. 이 두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민주주의 체제의 바로미터가 된다. 엽관제(spoil system)는 정당에 대한 공헌이나 인사권자의 개인적인 관계를 기준으로 공무원을 임용하는 제도다. 임명권자의 개인적 신임이나 친소관계를 기준으로 임용하는 정실주의(patronage system)와 비슷한 점도 있다. 실적제(merit system)는 개인의 능력이나 실적을 기준으로 삼는 제도로 주로 공개시험으로 사람을 뽑는다.

문재인 정부가 정무 고위직 임명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청문회에서 밝혀지고 있는 임명 후보자의 자질 등 개인적 속성이 그 직에 적격한지 판별하는 것은 기준도 모호하고 쉽지가 않다. 이것이 엽관제의 난점이다. 국회에서 가름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실정법상 절차의 의례에 불과하다. 부적격자라고 야당이 반대하고 언론에서 야단을 쳐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말 못한다.

문대통령은 17명의 장관 중 15명을 정당 또는 선거 때 힘을 보탠 사람을 임명했다고 한다. 선거전에서 승리한 정당이 정무직 공직을 싹쓸이 한다는 엽관제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신임 장·차관 임명식 수여식에서 유일하게 유임된 외교부 1차관이 임명장 대신 꽃다발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부의 정책을 지우려고 골몰하는 것은 고금을 통하여 어느 시대 어느 국가도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가 잘된 나라와 덜된 나라에서 그 차이가 날 뿐이다. 왕조시대에는 정권이 바뀌면 정적이나 반대파를 갖은 죄목을 씌어 왕의 뜻대로 처리했다. 사약을 내리고 귀양을 보내는 등 악행이 많았다.

현대국가에서는 법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 놓고 상응한 죄목을 찾아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서 곤욕을 준다. 사형, 징역, 벌금 등 처벌단계를 정해 놓고 인격을 말살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본질은 왕조시대와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던 분이 재판과정에서 하소연 하는 말이 귀에 남는다. 임금을 잘 못 모신 도승지가 사약을 받은 것처럼 자기도 그러고 싶다는 넋두리를 들으면서 권좌는 영구하지 않음을 실감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법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죄질에 따라 걸 맞는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의 정책방향이 옳다 그르다 짚어 말하기는 뭣 하지만 대통령이 공약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감이 든다. 공약은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측면이 있어 실천을 장담할 수가 없다. 대통령 자신은 공약을 실천하여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싶겠지만 큰 예산이 수반되거나 국민들의 저항이 있으면 그 내용을 적절히 수정 조절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대통령의 인기는 정책보다 서민에게 다가가는 행태에서 나온다. 누구나 겉모습과 속 모습은 아주 다를 수 있다. 나라 운영의 근간은 인사행정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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