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口舌)에 관한 단상(斷想)
구설(口舌)에 관한 단상(斷想)
  • 승인 2017.07.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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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악기, 그 중에서 특히 관악기들은 출력되는 부분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 크고 작은 음량을 갖는다. 물론 음폭도 다양하고 울림도 매우 차이가 난다. 부는 형식은 기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원리는 큰 차이가 없다. 이렇듯 악기에 따라서 울려 퍼지는 영역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람의 입은 모양도 다르고 목소리는 다르지만, 말이 주는 영향력은 누구냐에 따라서 크게 차이가 난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은 그래서 무섭다. 손가락 하나 정도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호기심이 많은 아돌프라는 청년을 대화를 통해 깨닫게 한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웃에 사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재미삼아 전하려던 그의 말을 가로막은 채, 세 가지 ‘체’에 대한 이야기를 조목조목 짚어 주었다. 첫째, 그 이야기가 증거가 확실한 사실인지 둘째, 선(善)을 기반으로 한 좋은 이야기인지 셋째, 꼭 필요한 이야기인가를 걸러주는 ‘체’에 그 이야기들을 거르고 난후에도 전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인지 물었다. 물론 아돌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SNS의 발달로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한 이야기도 아니고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게다가 꼭 필요한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를 전하는데 급급한 현대인들이 많이 늘었다. 한마디로 소용없는 이야기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서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이들에게는 단순한 재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대상이 된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일일이 해명을 할 수도 없고 그럴 기회조차 사실은 없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도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있다.’고 꼬집고 있고, 이에 관한 비유와 속담은 부지기수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도 그와 일맥상통한 속담이라 할 수 있다.

불과 얼마전에 필자의 지인으로부터 이와 비슷한 일을 전해 들었다. 교제중인 A와 B, 모두 잘 알고 지내던 C는 그들 각자의 개인 블로그 등에 게시된 글들을 보며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 먼저 B에게 안부 전화를 했고, 그럴 때마다 A에게 화가 난 B로부터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B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하자는 취지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반면 B는 더욱더 C를 의지하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되어 어쩌면 A에게 치명적인 명예 훼손이 될 수 있는 이야기까지 덧붙이게 되었다. B가 C에게 고백(?)한 후 어쩌면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했지만, 이미 늦어 버린 상황이었다. C는 그의 연인이자 A와 선후배관계에 있던 D에게 모든 사실을 전했고, A도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모두 알게 되어 버렸다. 그 후의 이야기는 예상대로다. B와 C는 물론이고, A와 B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채 결별하는 위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법적인 절차까지 검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가 다행히 당사자인 A와 B가 직접 만나서 오해를 풀면서 잘 해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를 했다.

어딘가에 소속이 되거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흔히 자의로 혹은 타의로 관계와 관계를 지속하거나 단절해야 하는 위치에 ‘내’가 개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의로는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상 선례를 든 A와 B의 경우에도 C의 입장에서 우연히 그들의 ‘소원(疏遠)함’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B에게 행동강령을 권하거나 본인의 궁금함을 채울 일이 아니라 A를 직접 만나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권했어야 했다. 물론 본인이 답답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자문을 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이를 외면하라는 뜻이 아니라 본인의 능력 밖의 일을 전지전능한 것처럼 위로를 빙자해서 당사자인 A를 배제하고 B를 포함한 A의 주변인들을 모아서 자리를 마련하고 의논을 해봐야 이렇다 할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감정적인 문제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A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부분이 더 황당하고 서운할 수 있다.

지금 남북의 상황도 그렇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의 주변국들은 C와 크게 다르지 않다. D는 일단 배제하더라도 그들의 역할은 남과 북의 대화를 주선하는 게 전부다. 오해가 오해를 낳고 하물며 사드배치와 관련해서도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탁월한 능력이 아니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무책임하고 배은망덕(?)한 국가의 이미지로 남을 뻔 했다. 전직 대통령 중에 어설프게 영어 구사하다가 놀림감이 된 사례와 비교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어찌되었건 인사청문회에서 구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그녀를 믿고 응원했던 필자까지도 뿌듯한 방미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와 북한은 A와 B다. 6자회담이고 뭐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이다. 그 누구도 A와 B를 대신할 수 없다.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이념 몰아가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양국 간의 불가침 협정 이행이다.

대한민국은 군사 실무적 신탁통치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고, 스스로 부국강병의 대안을 마련하되 더 이상 주변국들이 그들의 국익을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르게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타국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구설수(口舌數)에 휘말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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