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逆說)의 유희
역설(逆說)의 유희
  • 승인 2017.07.16 09: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사윤 시인
일상은 늘 진실과 거짓의 현상에 노출되어 있다. 진실인 듯 보이는 거짓과 거짓인 듯 보이는 진실들이 날마다 반복해서 일어나고 언론 등에서는 이를 규명하기 위한 인력을 투입하고 정보를 양산하고 배포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과거? 엄밀히 말하자면, 인터넷의 발달로 다양해진 전산망이 확산되기 전보다 더 많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가령 구매자의 입장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를 보더라도 과거에는 용도에 따라서 크기나 색상 정도를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쇼핑몰의 경우 제조사를 비롯해서 똑같은 상품도 유통하는 곳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하물며 유사품조차 정품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교해서 혼란을 겪게 된다. 판매자의 잇속보다 구매자의 영악함이 앞지른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제품의 기능에 큰 차이가 없다면 정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구매를 한다. 판매자는 유사품 판매에 따른 법적인 책임의 위험까지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자의 욕구에 더욱 성실하게 보답하기 위해 정품의 단점까지 보완한 유사품을 만들어내서 유통해 내고야 만다.

패러독스(paradox)는 거짓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참인 명제, 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짓인 명제 그리고 전혀 오류가 없지만 나중에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되는 추론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철학서에서 흔한 예로 나오는 악어의 고민, 아기를 안은 어머니를 만난 악어가 문제를 내서 어머니가 맞히면 무사히 돌려보내주고 틀리면 가차 없이 아기를 해치겠다는 제안을 한다. 문제는 ‘악어가 아기를 잡아먹을까?’였다. 어머니의 대답은 ‘악어는 나의 아기를 잡아먹을 것이다’였다.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밝히자면 아기와 어머니는 무사히 돌아갔다. 악어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기를 해치자니 정답을 맞혔으니 무사히 돌려보내야 하고, 살려두자니 어머니가 틀렸으니 아기를 해쳐야 하는 모순에 빠져버린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악어가 아기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답을 제시했다면 의외로 간단해진다. 아기를 해치면 모든 것이 명료해지기 때문이다.

상기한 예는 악어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예이지만, 대부분 문제를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아니면 말고’식의 한없이 즐겁고 유쾌한 유희가 될 수 있다. 풀어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이는 어떨까. 갈등과 좌절, 그리고 혼란의 명제를 두고 진학, 승진 등의 조건을 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 출제자는 응시자와 달리 ‘갑’인 경우가 더 많은 현실이니 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우리’는 누군가의 갑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 ‘을’로서 이런 제안들을 받아들여야 하고 풀어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악어는 극단적인 예지만, 일반적으로 조건을 제시한 질문에는 매일같이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질문에 가장 현명한 대답은 내게 불리한 답변을 하는 것이 그나마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야비한 질문을 거부하는 법을 잊어 버렸거나, 다소 비굴하고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부분을 참아낼 수 있다면 말이다.

음주운전은 안 된다. 참인 명제다.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고 당연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굴절시켜 보자. 술은 마셨지만, 타고난 혈중 알코올 해독 능력을 타고난 이가 있다. 그는 평생을 음주 운전을 해왔고, 실제로 단속에서 측정기를 통해서 드러난 음주 운전 여부의 값은 ‘거짓’이었다. 술을 마셨는데, 안 마신 것과 다름없는 결과 값에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반드시 차를 두고 가는 이가 있다. 그 두 사람이 만나서 술을 마시게 된 자리, 아무리 마셔도 혈중 알코올이 거의 남아 있는 않은 갑과 한 잔만 마셔도 반드시 대리운전을 불러야 하는 을이 만난 술자리다.

두 사람은 꽤 많은 술을 마시고 마침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갑은 으레 그렇듯 운전을 하고자 했고 을은 아예 차를 갖고 오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가야할 상황이었다. 을은 한사코 갑에게 대리운전을 부르라고 종용했고, 갑은 을에게 집까지 태워 주겠다고 했다. 을은 제시를 받은 상황이 된 것이다. 갑은 어찌되었건 대리운전을 부를 생각은 없다. 집과 방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꽤 먼 거리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는 제안을 받아들일지, 모른 체 하고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갑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귀가를 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두고 보자면 재고의 가치도 없다. 일관성의 면을 두고 보자면 갑은 해 오던 대로 했을 뿐이지만, 을은 ‘갈등’이라는 걸 했기에 정당하지 못한 선택을 한 셈이 된다.

‘내’가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니 일단 음주운전을 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덤으로 택시를 부르는 번거로움도 해결된 셈이니 그의 선택은 그의 입장에서 이래저래 나쁘지 않다. 물론 바른 선택은 끝까지 갑에게 대리운전을 하게끔 했어야 했지만, 갑은 술을 마셔도 잘 취하지 않을뿐더러 음주측정기조차 ‘거짓’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갑은 앞으로도 음주운전이 아니니 음주운전을 하고 다닐 것이고 을은 음주운전을 하고 있지 않은 갑의 차를 타고 다닐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궁금하다. 갑은 음주 운전을 한 것인지, 안전 운전을 한 것인지 말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