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상상(想像)
한 여름의 상상(想像)
  • 승인 2017.07.17 21: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신앙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기쁨 가운데 하나는 상상의 즐거움이다. 상상은 한자로 想像인데 모 TV 프로에 나온 한 대담가가 그것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인도에서 코끼리를 본 중국인이 중국에 가서 코끼리를 설명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인도에서 코끼리 무덤을 발견한 중국인이 코끼리뼈를 가져와서 그 뼈를 놓고 설명하니 비로소 이해하더란 것이다. 그래서 상상이란 한자어에 ‘코끼리 像’자가 들어있다는 설명이었다.

코끼리 뼈 없이 생각하는 것은 상상이 아니라 공상이나 망상이 된다. 나에게 있어 신앙은 성경이라는 뼈를 두고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이다. 성경없이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은 공상이며 몇 천 년전에 기록된 성경을 상상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읽는 것은 종교적 노동이 된다.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그 첫 장과 둘째 장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창조하셨는가를 설명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로 압축되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 그 뼈를 두고 코끼리를 상상해 보는 것은 즐겁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한 여름, 성경을 펼쳐 둔 나의 손길은 다음 장을 쉽게 넘기지 못한다. 신에 대한 상상, 인간에 대한 상상이 내 손길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늘과 땅을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왕의 모습이다. 우주와 천지를 손에 붙들고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왕이신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하시는 성경의 말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을 의논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왕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른 어떤 피조물과 달리 인간은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 긴급 천상회의를 소집하여 의논한 끝에 만들어진 존재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이다. 인간 모두에게 그 존귀함이 반영되어 있다. 뼈를 두고 상상하는 코끼리의 모습은 공상이 아니듯 성경을 두고 상상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결코 망상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정말 스스로 가늠하지 못할 만큼 존귀한 존재일지 모른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왕이신 하나님이 자기의 모양을 따라 만든 인간의 모습은 당연히 왕이다. 고대 모든 국가들이 왕과 백성들을 현격히 구분하고 왕을 신격화한 것과는 달리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왕으로 삼고 그에게 통치권을 부여한다. 진정한 왕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 뿐이요, 모든 인간은 대리 통치권자인 왕이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로 동등함을 유지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 아닌가? 고대의 왕들이 자기 형상을 닮은 조각물을 곳곳에 두어 자기의 통치 영역을 선포했듯이 왕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의 존재는 그 분의 통치 영역을 의미하리라.

나는 그 분의 통치 영역의 일부를 위임받은 왕으로 나의 가정, 우리 동네, 나의 직장이라는 나의 영역을 어떻게 다스려 가야 할 것인가? 그 분의 통치 이념은 공의와 정의일 것이다. 공의와 정의는 불의에 짓눌리고 잘못된 사회 구조가운데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들어 주고 그 한을 풀어주는 것이리라. 뼈를 두고 상상하는 나의 코끼리는 이렇게 확장된다.

그동안 좋은 기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종근당 회장의 갑질 논란이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재벌 회장이란 존재는 임기가 제한된 대통령보다 오히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두렵지 않은가? 그 성경이란 뼈가 상상하게 하는 그 하나님은 그런 재벌 회장의 오만함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그 뼈를 보고 생각하는 나의 상상일 뿐이다.

한 여름, 내가 상상하는 그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을 한없이 존귀하게 여기신다. 우리 아픔에 귀를 기울이시고 맺힌 한을 풀어주시는 공의와 정의의 왕이시다. 그 분 앞에서 모든 사람이 존귀하며 동등하다. 그런 세상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한 여름 밤, 나의 상상은 허망하지 않은 소망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뼈없는 공상이 아니라 뼈있는 상상이기 때문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