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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프로메테우스와 독수리 - 선지자에게는 고통이 따르지만

기사전송 2017-07-25, 21: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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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그리스의 신화 속에 예견(豫見) 능력을 지닌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 자체에 이미 ‘앞을 본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족(神族)끼리의 전쟁에서 제우스가 이길 것으로 예견되자 자신과는 다른 종족이었지만 제우스를 도와줍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능력을 아껴 가까이에 두고 여러 가지 일을 맡깁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게 합니다. 이 부분은 훗날 <성경(聖經)>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 탄생 이야기의 원형(原形)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신(神)에게도 관계 속에서 더러 상충(相衝)하는 바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었나 봅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만든 인간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여 모두 없애버리고, 보다 완벽하게 새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만든 인간에게 애착을 가지고 지키려 합니다.

그리하여 제우스와 갈등을 겪던 그는 신의 세계에서만 쓰이고 있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줍니다. 인간은 이 불로 물질적인 풍요는 물론 예술적인 삶도 함께 향유(享有)하게 됩니다.

이에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자 인간 판도라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에게 보냅니다. 판도라를 만들도록 명령을 받은 대장간의 신 헤파이토스는 이 여인에게 참을성과 양보의 미덕을 넣어주었지만, 교활했던 신 헤르메스는 이 여인에게 시기와 질투, 남성을 홀리는 교태, 격렬한 욕심 등을 넣어주었습니다.

제우스의 계략을 알아 챈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를 거절하도록 종용합니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나중에 알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덥석 받아들이고 맙니다.

판도라는 지상으로 내려올 때에 제우스의 명령 없이는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는 상자 하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제우스의 설계였습니다.

어느 날 판도라는 열지 말라는 상자를 끝내 열어보고 맙니다. 상자 속에는 인간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수많은 현상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때 상자 속에 들어있던 전쟁과 질병, 고통, 절망과 같은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아뿔싸!’하고 뒤늦게 뚜껑을 닫았을 때에는 바닥에 딱 하나 ‘희망’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판도라는 인간에 더 가까웠던 것입니다.

제우스의 복수는 이처럼 은근하기도 하였지만 또한 직접적인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인간들이 불의 힘으로 점점 세력이 커지자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카프카스의 바위에 사슬로 묶고 독수리를 보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간을 쪼아 먹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신이었기에 죽지 않고 그 간은 끊임없이 다시 회복되곤 합니다.

시지프스에게 평생 동안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올리도록 벌을 내린 것 역시 제우스였습니다. 이때에는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했다 하여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프로메테우스의 간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새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을 찾고 있는 필자에게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는 몹시 불만스러웠습니다. 억센 발톱과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독수리로서 그저 심부름이나 하고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명령만 수행하는 그 수동적인 행동이 미욱스러웠습니다.

이 독수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이 독수리는 그 뒤 헤라클레스에 의해 처치되고 맙니다.

프로메테우스의 행동과 입장을 이해하였던 헤라클레스는 이 독수리를 없애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영혼 없이 수동적 행동에 빠져서는 아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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