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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우리는 아직도 갑질인가?

기사전송 2017-07-31, 22: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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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땅꽁회항으로 알려진 김현아 대한항공 전부사장의 갑질이 기억에 생생한데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 갑질로 인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인 폭언을 퍼부은 종근당 회장의 갑질도 충격적이었지만 총각 네 야채가게 대표의 갑질 논란도 놀랍다.

‘종근당’이라는 비교적 좋은 기업이미지를 가진 기업의 회장이 자신의 차를 모는 운전기사에게 행한 갑질은 우리나라의 기업인의 윤리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사건이다.

그 사건은 비단 종근당 대표라는 한 기업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터져 나온 것이 총각 네 야채가게 대표의 갑질이다. 우리 동네 한 편에서 과일과 채소를 파는 프랜차이즈의 대표가 욕설과 폭행, 금품 상납을 일삼아 왔다니 참 놀랄 일이다. 그런 갑질을 카리스마라 여겨왔다니 더욱 어이없는 일이다. 우리 기업계는 아직도 이토록 천박한가?

우리 사회의 갑질의 심각성은 기업계 외에도 학계와 종교계에도 그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학계의 교수들과 종교계의 목사와 장로들의 갑질 논란은 기업계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학계와 종교계는 인간의 정신과 신앙을 근간으로 하는 반면 기업계는 돈을 바탕으로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에 대한 일부 교수들의 갑질이나 일부 종교인들의 갑질 논란은 이미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모든 종교가 갑질에 대해 경책하겠지만 기독교는 이러한 갑질에 대해 단호하게 경책한다. 그 사상적 기저는 ‘인간의 존엄성’이요, 경제적 기저는 ‘안식년 및 희년’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인 것을 천명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폄하할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예수는 가장 작은 자에게 한 행동이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작은 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또 인간은 이 땅에서 가장 작은 자에게 한 행동으로 인하여 마지막 심판 때 그의 운명이 갈리어 질 것을 분명히 말씀한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이 엄중한 경고를 애써 무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무시할 수는 있어도 결코 이 말씀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의 갑질은 언젠가 있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화를 자초하는 무서운 일이다.

안식년과 희년은 갑질을 막고자 하는 하나님의 경제적 보장제도이다. 그 제도의 핵심은 모든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땅을 소유할 수 없고 다만 빌려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사람에게 소득과 지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기본적 생존권을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희년(喜年)은 기쁨의 해이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희년은 빼앗긴 생존권을 회복하는 해이다. 그는 희년을 통해 생존권을 회복하는 기쁨을 누린다. 또 한편의 사람에게 희년은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회복시켜 주는 해이다. 그는 희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회복시켜 주는 기쁨을 맛본다. 이것이 안식년이나 희년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근본적인 취지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갑으로서 갑질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을로서 갑질을 당하기도 한다. 희년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갑으로서 을의 생존권을 도와줌으로써 맛보는 기쁨이며, 을로서 회복된 생존권을 통해 누리는 기쁨이다.

회복되어야 할 갑질의 본질은 무엇인가? 을을 협박하고 위협함으로써 누리는 쾌감을 그만두고 을의 인권을 존중하고 생존권을 배려함으로 인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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