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활인(寸鐵活人)
촌철활인(寸鐵活人)
  • 승인 2017.08.0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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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공자가 현인(賢人)은 지혜로울수록 어리석은 것처럼 보여야 하고, 공이 뛰어날수록 겸허하게, 용맹스러워도 두려운 것처럼, 부유할수록 겸손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이른 바 있다. 맞는 말인데 행하기가 쉬운 말은 아니다. 어떤 조직에 속해 있든 공과를 다투는 것이 일반적이고 무엇보다도 고과 성적에 따라 진급을 결정짓는 수직관계의 현실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직적인 조직에선 장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고 해서 팀제로 전환한 사례도 있지만, 그곳에도 팀장이 있지 않은가. 물론 팀장은 프로젝트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 있다고는 하나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어느 조직이든 지도자의 역할은 필요하고 이는 책임감과 바로 맞닿아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이의 선별은 불가피하다.

조직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경영학과 인문학에서 연구되어 왔지만, 어느 하나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와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따라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론적 기반이 무시되기 일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인조직의 형태가 수직적 명령체계가 신속한 의사결정에 적합하다고 해서 우리나라 근대사에 성행했던 가내수공업이나 소규모 기업에서는 활용도가 높았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가입 등으로 국제적인 기구들과의 소통과정에서 인권에 관한 부분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서 점차 스텝조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에머슨(H. Emerson)이 직계참모조직(line and staff organization)을 제안함으로써 이상적인 조직의 형태가 만들어진 듯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또한 이상에 불과했다.

한편 인사관리의 형태도 이에 뒤질세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의 발전에는 대기업의 홍보부서의 역할이 컸다. ‘나눔 경영’, ‘섬김 경영’, ‘펀(fun) 경영’에서 ‘신바람 나는 일터’에 이르기까지 유능한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계속 되어왔지만, 아직도 대기업의 이직(移職)은 실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간혹 핵심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이직할 경우에는 실로 기업의 존폐에 영향을 줄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라, 이에 걸맞게 처우를 해줄 수밖에 없다보니 억대 연봉자들이 속출하기에 이르렀다. 다수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들의 행복지수는 어떨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의외로 행복하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정작 그들은 격무에 시달리는데다 전 세계의 동종업계가 경쟁자다보니 만성적인 강박증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공감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 정도 대우를 받을 수만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명제를 얻는다.

누구나 내가 처한 환경과 여건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다수가 공감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현실’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받는 업무적인 스트레스만큼이나 중소기업 종사자들은 박봉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나’의 월급만큼 매달 세금을 낸다고 누군가 와서 불만을 토로하면 ‘나’는 그를 위로해 줄 수 없다. 오히려 그에게 타박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 그래서 공자의 이야기처럼 가진 사람들은 굳이 가진 티를 내지 말고,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더라도 자화자찬(自畵自讚)을 삼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능력과 재력을 갖지 못한 이에 대한 예의가 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처세술이기도 하다.

우리는 촌철(寸鐵)로 살인을 저지르기에도 사람을 살려내기에도 손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SNS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길지 않은 문장으로 한 사람의 인격이 도륙되어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소위 신상을 털어 버리는 일은 예사다. IT강국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여차, 말 한마디 잘못하면 당장 여기 저기 리트윗이 되어 공유되는데 그치지 않고 구글(Google)의 친절한 위치검색 서비스 덕분에 네티즌들의 거주지까지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보안이나 정보 계통의 종사자들조차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도움을 주고 있는 형편이다 보니 처신이 더욱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하다.

촌철활인(寸鐵活人)이어야 한다. 예전에는 상대를 비꼬거나 놀리는 반어적인 말을 잘하는 사람을 ‘재치가 있는 사람’이라면서 추켜세우던 시기가 있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대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인권유린의 80년대의 상황에서는 하물며 이런 은유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을 ‘용기 있는 자’라고 일컬었다. 상당부분 이 또한 사실이다. 지금은 그런 식의 재담은 필요치 않다.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말 한마디에도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도서가 인기를 얻고 있다. 비아냥대는 말투를 상용화하는 이들은 그들끼리의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누군가를 놀리기를 즐기는 이들은 본인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작고한 민중시인 김남주의 시집 ‘조국은 하나다’에 실렸던 ‘낫’이라는 작품이 떠오르는 오늘이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주인이 종을 깔보자/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바로 그 낫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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