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용기
소시민의 용기
  • 승인 2017.08.1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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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1980년 5월 광주’는 우리 대한민국의 미친 현대사이다. 꿈에서도 겪고 싶지 않고 소설에서라도 읽고 싶지 않은 우리의 역사이다. 그 때 그들은 미쳐 있었고 광주는 그들의 미친 짓을 온 몸으로 받아 내야만 했다. 신문은 그들의 미친 짓을 차마 쓰지 못하고 공백으로 남겼다. 모든 신문이 공백으로나마 전하려 했던 그 사실을 한 독일인 방송 기자가 영상에 담아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우리 대한민국의 미친 역사는 그에 의해 비로소 세계에 알려졌다. 숨기고 싶은 우리 역사의 그 한 토막은 한 시라도 빨리 전해져야 할 긴급한 진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은 거짓으로 덮어지고 도로는 시민들의 피로 덮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택시 운전사’가 그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영화 속에서 지금까지 전설 속에 떠돌던 그 사람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힌츠 페터씨. 그가 독일인 방송기자라는 것 그리고 그의 이름이 ‘힌츠 페터’라는 것도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1980년 5월의 신문은 공포에 질린 사람의 얼굴 마냥 온통 하얗고, 라디오는 칼에 위협당한 사람의 음성처럼 어둡고 두려웠다. TV는 온 몸을 결박당한 사람의 슬픈 몸짓을 영혼없는 배우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답답하고 어두웠던 그 시기에 누군가가 촬영하였다는 그 영상의 존재는 질식할 것 같았던 우리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큰 힘이었다. 도대체 그 사진과 그 영상을 누가 촬영했을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사실일까? 40여 년 전, 수없이 떠올렸던 의문의 그 사람을 영화로 만났다. 적어도 나에게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은 ‘힌츠 페터’이다.

주연 토마스 크레취만, 조연 송강호, 유해진, 류준열 등이라 해도 우리 배우 분들이 기분나빠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자 힌츠 페터는 그의 카메라로 1980년 5월 대한민국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찍어낸다. 그 기분은 마치 산부인과 의사에게 내 여자의 부끄러운 부분을 보이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의 가볍지 않은 진지하고 치열한 표정은 내 여자의 부끄러운 부분을 그에게 맡길 수 있다는 신뢰를 준다. 그 시대 그의 존재는 우리에게 그렇게 고마운 존재였다.

외국의 한 방송작가에게 우리가 이다지 큰 빚을 지고 있다니. 소시민인 일개 한 방송작가가 한 나라의 국민을 위해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다니. 힌츠 페터씨의 생명을 건 직업 정신이 놀랍고 기자라는 그의 직업도 달리 보인다.

독일인 힌츠 페터씨에게 지고 있는 마음의 빚을 그나마 감해 주고 있는 것은 택시 운전사 김사복이다. 아니 택시 운전사 김사복이 대표하고 있는 그 당시 우리의 소시민들이다. 우리들의 민낯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택시 운전사 김사복’으로 인해 1980년 대한민국은 그나마 부끄러움을 덜 수 있었다.

국가란 체제의 유지를 위해 정치와 권력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권력은 본성적으로 상황에 따라 거리를 피로 물들이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 정치와 권력의 광기가 1980년 5월 광주의 거리를 피로 물들였다. 영화 ‘택시 운전사’는 ‘소시민의 용기’야말로 그 광기에 맞서는 힘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소시민 힌츠 페터의 용기와 한국의 소시민 김사복의 용기 덕분에 대한민국이 완전히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는 우리 대한민국이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미치지 않게 하는 힘도 역시 소시민의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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