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별(辨別), 사람의 사계
변별(辨別), 사람의 사계
  • 승인 2017.08.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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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아침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하니 여름이 가려나보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리라는 걸 추호의 의심을 갖지 않고 믿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오랜 세월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온 변화와 규칙을 어긴 적이 없는 자연의 불변성이다. 물론 천재지변 등의 자연재해가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자연의 범주 내에서의 과부족일 뿐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자연에 대한 믿음 못지않게 사람에 대한 믿음이 매우 중요한, 오히려 더 중요한 부분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도 계절을 갖는다. 봄처럼 온화한 사람이 있고, 여름처럼 정열적인 사람도 있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가을의 향취를 풍기는 사람도 있다. 겨울처럼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도 있는 반면에 사계(四季)의 매력을 모두 가진 사람도 있다. 사람도 이처럼 사계다. 봄이 여름을 강요하지 않듯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이의 계절에 본인의 계절을 불러들이려고 한다. 활달한 사람은 원래부터 조용하고 사색을 즐기는 사람에게 음주가무를 즐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부질없는 일이다.

인격, 사람마다 가진 계절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여름의 태양과 가을의 바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봄의 대지는 씨앗을 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봄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기와 바람, 그리고 시원한 빗줄기에 대한 약속을 믿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해 낼 때 비로소 세상은 제 빛을 띨 수 있고, 비가 내린 후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모임을 하다보면 고성이 오가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유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누군가 너무 잘난 척을 하거나, 본인을 깔본다고 여길 때 참기가 힘이 들 때 고함을 지른다. 참을 필요는 없다. 눈꼴 신 모습을 즐기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필요는 더욱 없다. 오죽하면 본인 스스로가 그곳에서 자랑할까 싶은 마음을 가지면 오히려 측은지심이 들기도 한다. 정말 잘난 이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모두 그가 잘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옷차림에서부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답지 못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서 첫인상을 남긴다면 그건 위선이다. 상대에 따라 이해를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 관계가 지속되다보면 원래의 모습과 상반되는 모습을 보면서 배신감이 들 수도 있다. 첫인상에서 보여줄 모습은 경직되고 형식적인 모습, 즉 자신조차 어색한 모습이 아니라 가장 자신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보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긴장되고 어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도 그럴 수밖에 없다. 편안한 만남이 오래 갈 수 있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사업이든 개인적인 관계든 오래갈 수 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조사(?)가 끝나면 급하게 관계정립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리다. 서로가 잘 모른 채 성인이 되어 만나서 갑자기 그동안 서로의 삶에 큰 기여라도 했던 것처럼 호형호제를 서슴지 않는다. 친밀도가 높아질 수는 있어도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인연에 대해서는 계절이 변하듯 시간이 필요하다. 서두르면 인재(人災)가 벌어질 수도 있다. 충분히 서로를 알아간 후에 그리해도 늦지 않다.

여름이 오면 해마다 매미가 운다. 똑같은 나무에서 똑같은 울음을 들려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매년 다른 매미가 울고 있다. 그럼에도 우린 같은 매미가 울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자연의 약속은 이렇듯 얽히지 않고 지켜지고 있다. 우리도 그 약속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다. 매미가 새처럼 지저귀게 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소중하다. 살아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것이고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와 사고를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건 자정(自淨)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문화된 법을 통해서 징벌을 가하기도 하고 규율이나 규칙을 통해서 질서를 잡아갈 수 있는 능력을 사람은 가지고 있다. 그걸 또다시 활용하여 교묘하게 법망을 벗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절대 권력을 가진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이젠 ‘절대’라는 의미도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둠은 서서히 빛을 가릴 수 있지만, 빛은 한 순간에 어둠을 몰아낸다. 촛불 하나로 동굴 전체를 밝힐 수도 있다. 어둠이 온 대지를 뒤덮는다 해도 누구 한 사람이라도 불을 밝힌다면 세상은 투명해질 수 있다. 그 빛은 누군가를 부끄럽게 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촛불집회를 통해서 얻은 것은 집단 행위를 통한 목적 달성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였다. 살수차가 두개골을 짓이길 것 같은 고통을 견뎌낸 인내였고, 철옹성처럼 둘러싼 위압적인 차벽들을 뛰어넘어 권력에의 항거가 이루어낸 쾌거를 잊어선 안될 것이다. 이제 그 촛불이 정치를 비롯한 경제, 앞으로는 더 많은 분야들까지 밝혀갈 것으로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저마다 변별력을 잃지 말고 심지를 돋울 필요가 있다. 세상이 좀 더 밝아지고 투명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도 불을 밝혀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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