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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뱀사골에서 만난 폭우

기사전송 2017-08-22, 21: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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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7월 중순, ‘숲과 문화’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지리산으로 나무를 만나는 이색적인 여행을 다녀왔다. 15명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평균 연령이 60대 중·후반에 이르렀음에도, 지식을 위한 탐구의 열기는 청년이 부럽지 않았다.

첫 번째로 찾아 나섰던 주인공은 뱀사골 깊숙이 자리 잡은 ‘천년송’이었다. 신선길이라는 표지가 붙은 입구를 지나 큼직큼직한 바윗길을 걸으며 굽이굽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는 저 활기찬 물줄기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뚝 솟은 나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우람하고도 압도적인 정기가 저절로 느껴졌다. 할머니 소나무를 먼저 만났고, 조금 높은 곳의 할아버지 소나무도 만났다. 일행들은 저마다 기념촬영과 단체사진도 찍는 등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땀이 식을 때쯤 하산을 위해 일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돌아서는 발길에 미처 흙이 묻기도 전에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빗속을 마구 내달렸다. 그러나 피할 곳이라고는 창고 건물에 달린 짧은 처마가 전부였다. 빗금을 그으며 내려치는 폭우에는 속수무책으로 고스란히 비를 맞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나 같이 물에 젖은 생쥐 모양으로 벽에 나란히 기대어 선 채, 하늘을 바라보며 이 게릴라성 폭우가 속히 지나가기만을 기도할 뿐. 속옷까지 흠뻑 젖어 옷을 입은 채로 빗물을 비틀어 짜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돌아서서 한두 가지 옷을 벗어내기도 했다.

천둥을 동반하여 무시무시하게 내려치던 성난 파도 같은 빗줄기도 한 30분 정도가 지나니 조금 기세가 누그러졌다. 그제야 우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하산을 서둘렀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 속의 지폐도 모두 젖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서로를 쳐다보며 웃고, 이것도 추억이라며 사진을 찍기도 했으니 자연 앞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민박집에서 단체로 하룻밤을 묵는데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빙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오랜 추억에 잠기기도 했으니, 여행의 묘미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둘째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하얗게 드리워진 운무를 머리에 이고, 국보 1점과 보물 11점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실상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벽송사에서 ‘미인송’과 ‘도인송’이라는 이름의 소나무를 만났고, 벽송사의 부속 암자인 서암정사에서는 돌에 새겨진 불상과 불화, 석굴 법당 등 찬란한 예술작품에 입이 벌어졌다. 함양 상림 숲과 연꽃단지에서 종류별로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연꽃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돌아오는 길에는 천연기념물 제410호로 지정된 거창의 ‘당산 소나무’도 만나는 등 빈틈없는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해산을 앞두고 일행들 모두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뱀사골에서 만난 폭우’였다며, 피로한 기색보다는 즐겁고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던 점은 반성해야할 일이었다.

깊은 산에서는 언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대비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그 폭우가 계속 이어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또는 시간이 늦어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왔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이 없었던 데다가 하늘도 매우 맑아, ‘날씨까지 우리를 도와준다.’며 좋아했던 것이 불과 한두 시간 전이었다. 그리고 뱀사골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몸만 가볍게 나섰으니 우비가 있어도 몸에 지니지를 못했다. 하지만 천재지변 앞에 핑계나 이유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겉으로 표현은 못했으나, TV에서만 보았던 조난사고가 우연한 남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점에 소름이 살짝 돋았던 것도 사실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다. 준비가 철저하면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여행은 목적에 따라 정상을 향한 등반이나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걷는 둘레길 산책도 있고, 계곡에 발을 담그고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하는 휴식이 필요한 때도 있다. 멀고 가까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만일의 사태를 위한 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을 되새기고 반드시 실천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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