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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안녕, 모스크바!

기사전송 2017-08-31, 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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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희 인문학강사
여름휴가에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와 그 이름도 독특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녀왔다.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프라하출발 항공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순간 필자는 마치 오래전 짝사랑했던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과 묘한 감정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사실 한국에 정착한 지난 10년 동안 해외를 적지 않게 다녔지만 출국목적은 학생신분으로 공부나 연수, 학회논문발표 등으로 언제나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다니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자유여행이라는 사실이 아마도 나를 설레게 하였던 것이다.

6년 전에는 밤비행기로 도착해 눈 내리는 희미한 조명의 모스크바거리를 달려서 대학교기숙사에 짐을 풀었었다면 이번에는 화창한 날씨에다가 모스크바의 중심인 아르바트의 아늑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곤 바로 나는 6년 전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 나는 짐을 들여놓고 어두컴컴하고 러시아특유의 향이 나는 낯선 곳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도 잠시,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거리로 달려 나갔었다.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 러시아에 대한 나의 인식은 정부에서 세뇌 시켜준 대로 사회주의를 버리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북한을 떠나서 30대 후반에 만난 러시아는 나에게 매우 복합적으로 다가왔다.

1991년 구소련이 체제이전을 할 때 나는 고등학교 졸업 1년 전이었다. 그 혼란의 시대 북한은 주민들에게 구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국가들이 “사회주의”를 배신하였다면서 각종신문과 언론을 통해 알려주면서 수령과 당을 따라서 붉은기를 끝까지 지키자면서 선전선동을 하였다.

그렇게 막연하게 알고 있던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내가 지금 거닐고 있다니, 꿈만 같았다. 눈 내리는 거리를 거닐면서 제일 처음 떠오른 사람은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나의 부친은 과학자였다. 어린 시절 나는 구소련시기 러시아에 두 차례의 연수를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종종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를 제1외국어로 배우면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지인분들(동료학자)들은 나에게 아버지의 유창한 러시아어덕분에 현지생활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같은 것을 들려주면서 너의 아버지는 그렇게 대단한 인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늘 무릎에 나를 앉히고 러시아민요를 불러주시고 가끔 소련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생존에 많은 분들의 존경을 받으신 아버지,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거주지이전의 자유도 없고, 해외출국은 더더욱 드물고 힘든 북한사회에서 외국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다녀오신 학자아빠에 대한 나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내가 14살 되던 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서재에서 수십 년 동안 쓰신 아버지의 일기책들이 발견되고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탈북하기 전까지 수없이 일기를 읽어보면서 아버지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모스크바에까지 들르셨는지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40여 년 전 어쩌면 아버지가 이 거리를 거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면서 눈 내리는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한참동안 걸었다.

그때 1년 간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느낀 러시아의 문화나 교육, 행정시스템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70~80년대 북한에서 구소련영화를 자주 방영해서 그런지, 아니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오스트롭스키, 고리끼 등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어서인지, 아버지의 영향인지 나에게는 그만큼 모스크바의 시스템과 문화와 러시아어가 처음 방문하는 사람치고는 굉장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붉은 광장의 례닌묘와 푸틴대통령의 크레물린, 붉은벽돌의 역사박물관과 굼백화점은 서로가 상대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평양지하철과 너무나 닮아있는(아니 평양지하철이 모스크바지하철을 닮았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모스크바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만나는 빠르찌잔스카야역(빨찌산역)며, 푸시킨스카야역, 도스토옙스카야역, 쁠로샤지 레발류찌(혁명광장)역 박물관 같이 화려하면서 럭셔리한 지하철은 레닌의 명령하에 1930년대 초반부터 반공호 겸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에게 귀족계층과 같은 만족을 주기위해서 건설한 모스크바시민들의 자랑이고 관광명소다. 역마다 사회주의건설에 동원되는 소비에트주민들과 빨찌산 전사들의 영웅적 투쟁모습이 벽화로 새겨져있다.

이제는 북한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뜨랄레이부스(전기로 가는 버스)보다 우리나라 버스와 비슷한 현대식 버스들이 달리고 있다. 이러한 대조적인 조화들은 마치 한 도시에 소비에트와 러시아라는 두 얼굴을 느끼기에 충분한 역할을 한다.

그렇게 낯선 듯 익숙한 모스크바에서 마지막 목적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는 나의 마음은 어느새 벌써 톨스토이나 도스토예스키를 비롯한 많은 러시아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거리인 넵스킨 대로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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