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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보편(保便), 시늉과 실행

기사전송 2017-09-24, 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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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며칠 전, 필자는 한때 유명 연기자였던 원로배우 L과 모 대학의 학장으로 재직 중인 R을 만났다. 어떠한 이해관계도 얽혀 있지 않은 그야말로 이 만남을 중재한 여류작가 Y와 함께한 술자리였다. 먼저 장소에 도착한 L은 가게에서 여러 사람들이 알아보는 덕에 유명세를 치르며 한껏 고무되어 있었던 터에 R이 한 말씀을 부탁하니 ‘지역에서 창작에 힘쓰는 젊은 예술인들이 살아야 하고, 정치적인 어떠한 것에도 문화 예술인들은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며 본인의 의사를 밝히는 멋진 모습을 보였다. 듣는 내내 필자는 ‘역시 오랜 연륜을 가진 연기자는 저렇듯 나름의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술이 몇 순배가 돌아가자,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고, 그 사이에 Y가 뒤늦게 도착했다. L은 원로답게 과거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인맥을 과시하며 서정주 시인의 친일행적을 비호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당황스러운 건 그의 한 손이 Y의 허벅지와 허리를 더듬는 모습이었고, 더욱 놀라운 건 Y의 반응이었다. L이 ‘정’이 많아서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한다는 추후 해석이었다. 평소 Y의 모습대로라면 ‘성추행’으로 문제삼을만한 대목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리도 관대하게 만들었을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성추행은 그야말로 피해자가 피해의식을 갖지 않으면 그 힘을 잃는다. 음주 문화는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취한 와중에도 ‘예를 갖추는 것’이라 배운 필자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이런 자리는 불편합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고 하니 그제야 R은 사과를 했고, 초면인데다 분위기가 흐려질까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고 악수까지 나누게 된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L이 필자에게 ‘자네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술자리에서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정색을 하냐’고 개입하며, 점점 표현이 과해지기 시작했다. ‘너 몇 살이야?’라는 막말까지 하는 만용을 부렸다. 누구나 술자리에서 실수는 할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인데, 실수를 한 자가 사과를 하고 이를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결례를 한 자의 역성을 그의 오랜 친구가 끼어들게 되면서 상황이 백지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흔히 중재를 한다는 것은 가운데 서서 양쪽의 불통(不通)을 원만하게 소통(疏通)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L은 중재를 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R에게 치우쳐진 채 사과를 받은 이를 나무라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를 보편(保便)이라고 한다. 부당하게 길어지는 L의 역성에 필자는 예의를 갖추고, ‘어른이라 해서 너무 혼자 얘기하지 말고 상황을 보고 얘기하라’고 하니, L은 오히려 노인을 괄시한다고 분노한 연기를 하는 그는 천상배우임에는 틀림없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L의 지원 발언에 힘입어 사과를 했던 R조차 득세하여 의기양양하게 피해자에게 욕설과 고성을 지르는 행동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L에 대한 그의 익숙한 공명심이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민망할 만큼 그는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불과 조금 전까지 필자에게 사과했던 R이 필자에게 욕설을 하고 본인이 한때 싸움도 좀 했다는 걸 내세우는 학자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에게서 학문을 연구하고 배우는 학생들이 우려스럽지 아니한가.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그 대학의 학장이 도의적으로라도 연대 책임의식을 갖고 처신을 조심했으면 했지만, 이를 망각한 채 보여준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추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면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위 명문대학이라 자처하는 곳에서 권력 앞에서 맥없이 썩어 들어가는 뿌리를 부끄럽게 드러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수의 공명심이 만들어낸 터무니없는 우월감이 보여준 지극히 당연한 결과임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만행이다. 게다가 공인으로서의 위치도 망각하며 손바닥을 뒤집는 그들의 작태가 우습다. 사실 그날의 일화는 술자리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어떤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내는 것을 ‘시늉’이라고 한다. 시늉은 ~하는 척을 하는 부정적인 예로 쓰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죽는 시늉이라도 한다.’는 따위로 예의를 차리는 경우에도 쓰인다. 단언컨대 R의 행동이 시늉에 그쳤다면 실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실행’을 했고 L이 개입을 했고 Y는 방관을 했다. 그뿐이다. 문제는 그들의 ‘적반하장’의 모습이다.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L은 앞으로도 연기를 할 것이고 R은 과거 톱스타였던 그와의 인연에 감사하며 강단에 설 것이고 Y는 그들의 유명세를 지인들에게 뽐내는 일과를 보낼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시를 쓸 것이고 그렇게 어우러지거나 혹은 일그러진 채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물론 다음날 R이 Y를 통해 필자에게 사과한다는 문자를 전했다고 한다. 유쾌하지 않다. 분명히 필자에게 직접 사과하라고 Y에게 일렀음에도 그는 끝까지 비겁한 모습으로 남았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패거리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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