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숨바꼭질
  • 승인 2017.10.22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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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추억은 아름답다. 과거이므로 모두 아름답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추억은 아름답다. 추억(追憶)은 지난 기억을 더듬어서 회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씁쓸한 기억으로 남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도 추억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이 없으면 놀이가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가엾다. 새로 생긴 아파트마다 시설들은 점점 고급스러워지는데, 놀이터는 텅 비어 있다. 뛰어놀 아이들이 없고, 그곳은 성대수술과 중성화수술을 마친 강아지들의 놀이터가 되어 노인들의 휴게 공간으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얼핏 보면 마치 노인들이 아이들의 성지를 점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교 시간에 맞춰 노란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을 움켜쥐고 여러 사설학원으로 떠난다. 학교에 남아 축구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몇 안 되는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버스에 탄 친구들을 눈으로 배웅한다. 해마다 가속화되는 저출산율로 인해 아이들의 수는 줄어만 가는데, 그마저도 이렇게 나눠지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친구 잃은 아이들이 또 가엾다.

요즘 아이들이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잘못된 표현이다. 어른들의 인내가 부족한 탓에 정작 아이들에게 이를 기대할만한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사실적이다. 가령 신체발육의 경우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내 아이가 신장이 작은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바로 병원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성장발육이 다르다. 놀라운 건 이런 어른들의 요구에 발맞춰서 해당병원들은 거기에 맞는 처방과 치료를 제시한다. 아이들은 그날부터 환자가 되어 버린다. 황순원의 단편 ‘학’에서 묘사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아는 꼬맹이’가 당시에는 놀림감이었지만, 지금은 하늘 높은 줄도 알고 땅 넓은 줄도 아는 ‘고도비만’의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구에게나 봄가을에 얽힌 소풍놀이는 추억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인근 관광지 혹은 동산마다 조잡하고 뻔한 장난감들을 수레에 싣고 나타나는 상인들이 불어대는 피리소리, 저학년 아동들을 겨냥한 다양한 풍선들, 바쁘게 돌아가는 솜사탕, 그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이들에게 현혹되지 않도록 아이들을 부르는 담임 선생님들의 고함소리들이 모두 추억이다. 한편 이 모든 어수선함들을 고요하게 집중시키는 놀이가 있었는데, 바로 ‘보물찾기’였다. 70년대, 모든 물자들이 부족한 시기,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쓰던 그 궁핍한 시절에 귀한 학용품들의 이름이 적힌 보물찾기는 단연 최고의 놀이였다. 요즘 아이들은 유명 캐릭터별로 ‘소장의 가치’가 학용품 구매의 이유인 경우도 많지만, 당시에는 당장 내일 등교하자마자 바로 사용해야할 ‘소중한 가치’였기에 더욱 비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존재했다. 그는 아이들이 찾은 보물쪽지의 일부를 수탈(?)했는데, 그래도 세장의 쪽지 중 한 장 정도에서 만족할 줄 아는 양심은 남아있던 시기였다. 당시 소풍의 진행과정은 지금 생각해봐도 매우 합리적이었다. 일단 걷는다. 그것도 한 시간 이상은 족히 걸릴 거리를 도보로 걷는다. 도보로 걸으면서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고, 평소 다니던 길이었음에도 소풍 길에 지나는 우리 집도 다른 기분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산책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 버리면 아무 의미도 없는 그 길을 걸어서 가면 풀 한포기에 눈이 가고, 따가운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하늘을 바라볼 수가 있다.

보물찾기 못지않게 우리에게 긴장감을 주는 놀이가 바로 숨바꼭질이다. 아이들의 놀이 중에서 동선(動線)이 가장 넓은 이 놀이는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마력이 있다. 눈을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동안에도 이리저리 몸을 숨기기 위한 발자국 소리들에 신경을 써야 하는 긴장감, 그리고 이미 숨은 아이들을 찾아내기 위한 긴장감은 늘 어린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숨는 아이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두근거림을 공유하게 마련이다. 숨은 이와 찾는 이가 모두가 술래인 셈이다. 이 모두가 진심이었고, 진실이어서 가능하다.

어른들의 숨바꼭질은 재미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당기관들이 묵은 ‘적폐’를 청산하겠다는데, 정치보복이란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검찰과 경찰에 대한 신뢰가 크게 없다. 술래의 어원은 순라(巡邏)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야간에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와 범죄 등을 막기 위해 궁중과 도성 주변을 도는 이가 있었는데, 이를 순라군(巡邏軍)이라 하였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했다. 적폐를 잡아내는 것이 정치보복이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속적으로 보복했으면 좋겠다. 현 정권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차기정권에서 또 보복했으면 좋겠다. 없는 죄를 만들어서 벌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지만, 있는 죄를 찾아내서 처벌하겠다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민을 우롱하고 농단의 이익을 취한 자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숨바꼭질 절대 규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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