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검은 상자
세월호의 검은 상자
  • 승인 2017.10.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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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세월호가 바로 설 수 있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인 10월 27일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가 기관 구역에 대한 정밀 조사 등을 위해 선체를 직립하기로 의결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훨씬 지난 후지만, 그래도 다행스런 일이다. 세월호 선조위는 27일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제11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세월호 선체 직립 안건을 심의한 결과 이 같이 의결했다고 밝혔다. 심의에는 선조위원 8명 중 6명이 참석했고, 찬성 5명, 반대 1명으로 선체를 직립하기로 의결했다. 위원들은 기관 구역에 대한 정밀 조사, 조사관들의 안전 확보, 미수습자 5명에 대한 수색을 위해 선체 직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신항만에 전도된 채 거치된 세월호는 좌현이 바닥에 닿아 있어 기관실로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까지 상당량이 남아 있는 펄을 제거해야 정밀 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데, 수백억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하는 데에는 기획재정부와 해양수산부의 협의가 필요한 모양이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경, 그 서늘한 아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돼지국밥집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우짜꼬! 저기 무신 일이고?”하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들었다. 뜨거운 국물들이 바닥에 쏟아졌고, 주인 할머니의 시선은 여전히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때부터 생중계로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첫 항해가 되었을 지도 모를, 불과 하루 전만 해도 기대에 차서 동무들과 웃고 떠들었던 아이들의 여행이 아수라장으로 변해가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던 국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눈을 뻔히 뜬 채로 아이들의 손을 놓아야했고, 슬프고 애절한 마음이 분노로 이어져 촛불, 그 가녀린 희망을 들고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생존자 구조에서 어느덧 실종자 구조, 마침내 사망자의 시신 수습이라는 억장이 무너지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팽목항은 가족들의 눈물로 거센 바다조차 오열하게 했다. 구조작업과 인양이 물살의 상황에 따라 지연되면 될수록 정부는 궁여지책에 몰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진실을 밝히는 이유는 단 한가지뿐이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세월호를 건져 올리면 자신들에게 곤란해질까 저어해서 망설였던 책임자들은 지금 그 책임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잘못한 일을 더 잘못되게 만드는 것이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다. 진실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벌 받을 사람은 벌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억울한 사람은 그 누명을 벗게 해주는 것이 진실이다. 세월호가 바로 서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편 비용과 소요시간을 문제 삼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물론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데 필요한 예산이 수백억원은 족히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일각에선 그 예산으로 향후 안전대책이나 유가족들의 보상에 쓰는 것이 미래지향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과거에 집착해선 안 되고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선체를 바로 세워 남은 아이들의 유해를 찾아내고 진상 조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과거에 집착하는 일인가. 이보다 더한 현실이 어디 있는가. 지레 겁먹고 착각들을 하는 관계자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처벌은 당연히 이루어져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유해발굴과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잘못된 과거들이 쌓이고 쌓여서 일군 것들이 기껏 농단(壟斷)에 오른 자들의 횡포였고, 이들이 곧 적폐(積弊)의 주동인물들인 것이다.

세월호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일각도 기울이지 말고 똑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고 여건만 허락한다면 추후 역사교훈여행의 장소로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온 국민들을 집단 우울증에 빠지게 했던 그 슬프고 쓰린 세월호의 역사를 남겨둬야 한다. 저 한 몸 살겠다고 탈출에 앞장선 선장을 비롯한 어른들도 기억해야 하고, 불과 한 시간 후의 비극도 모른 채 친구들과 ‘공포’를 가정한 농담을 주고받던 사랑스러웠던 아이들의 죽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홍보대사 역할에 충실했던 순종의 어가길에 쓰인 대구 중구청의 예산이 70억 원이다.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극의 현장에서 아이들의 바닷길을 보여주는 데 기껏 수백억 원이 든다고 하는데, 이에 따른 예산은 어떻게든 마련되어야 한다. 힘겹게 지내온 유가족들의 슬픔과 우리들이 함께 가슴을 치던 그 시간들이 겨우 수백억 원으로는 턱도 없지 않은가. 더 많은 예비비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해내야 할 마지막 양심의 표현이다. 물론 국민의 혈세로 지출하는 만큼, 꼭 필요한 장비내역과 견적 산출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지금 이 부분을 두고 설왕설래를 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을 외면하는 처사다. 잃어버린 우리의 아이들을 또 다시 저 어둡고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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