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삼절은 송도삼절을 능가한다
정읍삼절은 송도삼절을 능가한다
  • 승인 2017.10.29 15: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어느 특정지역을 두고 경쟁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충분히 감안하면서 칼럼의 제목이 정읍과 송도를 비교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겠기에 무척 주저했지만 평론가의 본분이란 원래 소신을 피력하는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이 글을 쓴다.

누구나 알다시피 송도(松都)는 개성의 다른 이름이다. 고려 5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고도(古都)다. 당대의 수도였기에 수많은 영화와 영광 속에서 숱한 일화를 남겼다. 반면에 오랑캐의 침입과 군부통치로 인한 내부갈등도 엄청나게 많았던 도시였다. 바로 그 개성 땅에 예로부터 인구에 회자하는 말이 하나 있다. 송도삼절(松都三絶). 송도 땅에 세 가지 절대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박연폭포와 황진이 그리고 서화담이다. 황진이와 서화담은 지극한 사랑을 나눈 연애의 주인공이요 박연폭포는 그들이 노닐던 이름다운 폭포수를 가리킨다. 뛰어난 서화를 그리고 시를 쓰는 기생과 지조 굳은 선비가 펼치는 옛 사람들의 사랑 얘기는 그런대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북한의 개성에 비해서 더 오랜 고도인 경주는 풍부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황진이 같은 스타가 없다. 부여 역시 삼천궁녀의 애달픈 사연만 떠돌 뿐 절대치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고도가 아닌 정읍에는 자연경관으로서의 내장산과 동학혁명을 기포한 전봉준장군 그리고 문화사적으로 커다란 족적을 지닌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를 품고 있어 가히 삼절의 최고 가치를 겨눌 만하다고 생각된다. 사회적인 가치 측면에서도 박연폭포는 내장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명박이 청계천을 개발하여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이를 벤치마킹한 전국의 지자체들이 다투어 지역 개천을 똑같은 방식으로 개발한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명박은 이에 힘입어 별호까지 청계(淸溪)로 정했다. 전두환은 청계천 개발에 대해서 자기는 한강을 개발했다는 자랑을 하면서 청계천을 “도랑 하나 쳐놓고…” 하면서 폄하했다는 팩트가 불확실한 시중에 떠도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내장산은 비견할 수 없는 천하명산으로서 지금 단풍이 제철로 달려가는 중이다. 정읍사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고문(古文)의 대표적 작품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귀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데를 드데욜세라. 어귀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데 졈그를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이 노래는 백제시대에 유행하던 유일한 가요로 전해져 오며 조선시대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한글로 수록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행상에 나선 남편이 늦은 밤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음으로 밤길에 위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아내의 애달픈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절창이 아닐 수 없다. 아내는 결국 그 자리에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읽을수록 가슴이 저며 온다.

동학혁명은 정부의 가렴주구에 대항한 민중저항운동이었다. 전봉준은 동학이라는 종교를 바탕에 깔고 정읍 고부에서 궐기하여 삼남(三南)을 휩쓸고 전주성을 점령하여 정부와의 협약으로 집강소를 설치하는 등 혁명으로서의 가치를 성취했다. 한양을 공략하려고 공주까지 진출했다가 일본군의 최신무기 앞에 우금치 전투를 실패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것은 울화가 치미는 일이다. 전봉준의 동학혁명은 위대한 민중의 가치를 실현한 것으로서 지금 4.19혁명과 나란히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신청 중이다. 정읍삼절로 호칭하는 것은 정읍을 사랑하는 김정일의 아이디어지만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다.

나는 이번에 정읍을 방문하여 정읍삼절은 물론이요 정읍이 낳은 백정기의사 기념관까지 둘러보는 행운을 누렸다. 백정기의사는 상해임시정부에서 김구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윤봉길 이봉창의사와 함께 일본타도를 위한 선두역할을 한 분이다. 육모정사건이 사전에 발각되어 오랜 투옥생활 끝에 옥사했지만 김구선생은 그를 높이 평가하여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윤봉길 이봉창과 함께 묻혀 있다.

나는 칠보면이 외가여서 출향민 초청행사에 참여했는데 김생기시장과 애향운동본부 이한욱이사장 그리고 정읍사문화제 이동준위원장 등이 직접 따뜻하게 맞이해줬다. 내장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놈들의 손에 불 질러질 위기에 처한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全州史庫)를 통째로 옮겨 오늘날 왕조실록을 후대에 남긴 결정적 역할을 한 용굴이 있다. 이 깊은 산골에 실록을 옮겼던 관리들과 무거운 실록을 직접 지어 나른 하인들의 용기와 충성심이 없었다면 귀중한 기록문화유산이 사라질 뻔했다는 안타까움이 겹치면서 정읍삼절에 대한 새로운 인식화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