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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보라카이(Boracay)에서 겪은 일

기사전송 2017-10-31, 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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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세계 3대 화이트비치 중 한 곳이며, 해넘이가 장관으로 알려진 곳. 그리고 바다 밑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거대한 그림을 감상하는 듯 아름다운 환상의 섬, 필리핀 보라카이.

무덥던 여름이 끝나고 막 가을로 접어들던 9월 하순. 보라카이 여행은 우리가 선택한 상품 외에는 모두 자유일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지 않은 섬에서 몇 가지 준비된 체험활동을 제외하고는 딱히 이동할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적당히 늦잠을 자고, 모래가 고운 해변을 한가로이 걷거나 커피숍에서 수다도 떨며, 우리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 더 좋았다.

처음 사흘간은 비교적 높은 지대의 울창한 숲과 경관이 뛰어나고 수영장이 있는 멋진 리조트에서 생활을 하다가, 마지막 하루는 해변으로 숙소를 옮겼다. 해넘이(sunset) 감상이나 스노클링(snorkeling, 숨을 쉴 수 있는 대롱을 이용해 수심 5미터 안팎의 바다 밑 풍경을 감상하는 활동)을 위해 낮이나 저녁 무렵 잠깐씩 하얀 모래사장을 걸으며 즐거워했는데, 해변의 밤 풍경까지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더욱 탁월한 선택이라 여겨졌다.

오토바이 또는 삼륜차를 개조해 만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매일 보라카이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그곳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재미였다. 차선이나 횡단보도도 없는 좁은 도로가 불안해보였지만,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듯 기다리거나 쏜살 같이 지나가기도 했다. 어디서나 싱글벙글 웃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삼삼오오 마주서서 대화를 나누는 그들에게서 높은 행복지수가 보이는 듯 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개나 고양이가 누워있거나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태평스럽게 보였다.

더욱 잊지 못할 일은, 나흘째 밤에 일어났다. 더위가 가신 해변의 분위기는 예상외로 활기가 넘쳤다. 규모가 큰 식당에서는 음료와 함께 저녁뷔페가 한창이었고, 야외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불꽃쇼를 하는 등 눈요기를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그곳의 상인들은 언니, 이모, 아줌마 등 친근감 넘치는 호칭으로 관심을 끌기에 분주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해변을 거닐며 야경을 감상하던 중 군데군데 모래성을 쌓아놓고 기념촬영을 하라며 호객행위를 하는 무리들도 눈에 띄었다. 호기심으로 얼마냐고 물었는데, 한 청년이 ‘50페소’라며 손바닥을 쫙 펴보였다.

우리는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정말 50페소가 맞느냐’고 같이 손바닥을 펴면서 확인을 했다. 호객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그들 중 한 명은 카메라를 받아들고, 다른 한 명은 조명을 비추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권유대로 즐겁게 웃으며 앉아서도 찍고, 서서도 사진을 찍었다.

모래를 툭툭 털고 일어서며, 50페소의 지폐를 내밀었을 때 문제가 생겼다. 흥정을 했던 청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른 청년이 “not peso, dollar(페소가 아니라 달러)”라며 쇳소리를 냈다. 무슨 말이냐며, 우리도 얼굴을 붉혔다. 예상을 벗어난 우리의 반응에 50달러는 30달러로, 20달러에서 다시 10달러로 빠르게 미끄럼을 타고 내려갔다. 하지만 거기서 수긍할 우리가 아니었다. “delete”라며 사진을 삭제하겠다고 나서자, 그제야 “놀랍! 놀랍!”이라며 젊은이들의 줄임말 흉내를 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콩트 같은 일이라니. 우리는 처음 흥정했던 대로 50페소를 건네고 돌아서며, 크게 웃었다. 어쩐지, 너무 저렴하다 싶기는 했다.

하지만, 원가라고는 모래를 쌓는 손재주 밖에 없는 것을. 50페소(1,100원 정도)와 50달러(56,000원 정도)는 자그마치 50배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런 교묘한 수법으로 관광객을 홀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만약 우리가 다섯 명이 아니라 한두 명이었으면? 또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응대를 할 수 없었다면 어땠을까? ‘울며 겨자 먹기’로 고스란히 50배의 거금을 물고 우롱을 당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늦게 배운 영어가 얼마나 고마운지….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눈앞에서 속임을 당한다는 것은 매우 불쾌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그런 의외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대처한다면, 훨씬 즐거운 여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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