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야 날지 마라 - 옛 노래에 나오는 새들
백구야 날지 마라 - 옛 노래에 나오는 새들
  • 승인 2017.11.0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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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안동 풍산 병산서원 아랫마을에 초가를 짓고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한 권구(1672∼1749) 선생의 ‘병산육곡(屛山六谷)’을 읽었습니다. ‘병산육곡’은 서정 평시조 여섯 곡이 이어져 있는 연시조로서, 당시 세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을 흐르는 주류는 자연에 묻혀 안빈낙도하는 삶이 참다운 삶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구 선생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는 병곡(屛谷)입니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 일찍이 과거를 단념하고 유학의 전통을 지키면서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는 고향 마을에서 사창(社倉)을 열어 흉년에 빈민들을 구제하였으며, 향약을 실시하여 고을에 미풍양속을 일으켰습니다.

경학(經學)·예설(禮說)·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지지하였습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영남에 파견된 안무사(按撫使) 박사수(朴師洙)에 의하여 적당(敵黨)에 가담할 우려가 있다 하여 서울로 압송되었으나, 국문(鞠問) 도중 그의 인품에 감동을 받은 영조(英祖)의 특별 지시로 곧 석방되었습니다.

그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시를 읊으며 더욱 안빈낙도하는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병산육곡’에는 백구, 까마귀, 두견, 봉황 등 여러 새를 등장시켜 세태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1. 2곡에는 백구(白鷗)가 등장합니다.



부귀(富貴)라 구(求)치 말고 빈천(貧賤)이라 염(厭)치 말라

인생백년(人生百年)이 한가(閑暇)할 사 사니 이 내 것이

백구(白鷗)야 날지 말아 너와 망기(忘機)하오리다.

천심절벽(千尋絶壁) 섯난 아래 일대장강(一帶長江) 흘러간다.

백구(白鷗)로 벗을 삼아 어조생애(漁釣生涯) 늘거가니

두어라 세간소식(世間消息) 나는 몰라 하노라.



백구는 흰 갈매기로서, 동일시의 대상 즉 친화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유유자적하는 백구를 보고 더불어 세속의 욕심을 잊으려 하는 지은이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제4곡에는 두견(杜鵑)과 백조(百鳥)가 나옵니다. 두견은 세상에 버림받은 슬픈 이미지의 새입니다. 여기에서는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절대 고독의 존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백조는 흰 새(白鳥)가 아니라 여러 새(百鳥)를 말합니다. 즉 영남 남인의 몰락을 불러온 혼탁한 현실에 대한 탄식이 배어있습니다.



공산리(空山裏) 저 가는 달에 혼자 우는 저 두견(杜鵑)아.

낙화광풍(落花狂風)에 어느 가지 의지하리.

백조(百鳥)야 한(恨)하지 말아 내 곳 설워 하노라.



제5곡에는 까마귀와 봉황이 나옵니다. 까마귀는 세속적인 벼슬아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짖지 말고 나를 쫓아오지도 말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편편(翩翩) 고봉(孤鳳)’은 바른 눈과 소리에 격리되어 있는 봉(鳳) 즉 임금을 가리킵니다.



저 가막이 즛지 말아 이 가막이 죳지 말아

야림(野林) 한연(寒烟)에 날은 죠차 저물거날

어엿불사 편편(翩翩) 고봉(孤鳳)이 갈 바 업서 하낫다.



권구 선생은 이처럼 새를 통해 인간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뭇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그를 통해 교훈을 얻고 있는 혜안이 놀랍습니다. 권구 선생이 오늘날 우리들을 보면서 어떤 새를 떠올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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