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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짜장면과 껌딱지

기사전송 2017-11-12, 19: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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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국어순화(國語醇化)도 쉽지 않은 일이다. 틀린 말을 바로 잡아야 하고, 외래어는 가능하면 순우리말로 바꿔야 하고 외국어는 표기를 정확하게 해주어야 하니까 말이다. 국립국어원이라는 곳에서 이 어려운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개원 당시에는 국립국어연구원이었다가 국립국어원으로 바뀌었는데, 둘 다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한글날을 제외하고 크게 회자될 일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현실과 이상이 동떨어진 ‘따로국밥’같은 역할에 관심을 갖지 않은 이유가 크다고 본다. 서울이 고향인 친구가 대구의 따로국밥이 궁금하다고 해서 대접했더니 실망하는 모습이 선하다. “어차피 이렇게 말아 먹으면 그냥 국밥이랑 뭐가 다르냐”고 불평했지만, 여전히 나는 다르다고 믿고 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가끔 북한의 축구 중계방송을 보면서 그들을 놀리기 일쑤였다. 북한말은 거의 순우리말에 가까운데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퀴즈를 방송에서 내보낼 정도였다.

한편 ‘짜장면’에 대한 바른 표기법이 ‘자장면’인 것을 알았을 당시에는 실로 충격이었다. 어차피 중국에도 없는 짜장면은 춘장을 이용한 우리 식으로 개화된 새로운 음식인데, 굳이 어원과 어의를 따져서 자장면으로 바꾼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짜장면을 중국어 작장(炸醬 zh?ji?ng)과 면(麵)이 결합한 말로 보아 ‘자장면’이라 적도록 한 것인데, 어쨌건 외래어고 발음상의 정확한 표기도 어렵다는 것이 인정되어 2011년 8월 31일부로 혼용하게 된 것이 인정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당연히 한 나라의 언어를 표현하는데 문법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약속된 언어를 지킴으로 인해서 소통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문법을 위한 문법이어서는 안 된다. 요즘 많이 쓰이는 SNS를 우리말로 순화하면 ‘누리 소통망’이라고 한다.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 언어는 도태되게 마련이다. 바른 용어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수의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그 자체가 “약속”이다. 그 약속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립국어원은 탁상공론에 능한 국가 연구 기관에 불과하다.

언제부터 통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젊은 부부들이 자녀들을 ‘혹’이나 ‘껌딱지’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필자가 어렸을 때 유독 부모님들의 모임에 동행하는 경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분들도 으레 애들을 데리고 왔기 때문에 어린 우리도 불편함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혹’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 ‘혹’이 무엇인가. 병적으로 불필요한 곳에 불거져 나온 살덩어리 아닌가. 좋게 보더라도 어딘가에 부딪혀서 생긴 부어오른 ‘상처’다. 어떻게 두 사람이 만나 맺은 사랑의 결실을 ‘혹’에 비유할 수 있는가. ‘껌딱지’는 또 어떤가. 국어사전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껌과 딱지가 결합된 언어다. 씹을 때는 달콤하지만, 단물이 빠지고 나면 이내 애물단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 ‘껌’이다. 어딘가에 엉겨 붙으면 떼어내야만 하는 그 껌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종잇조각의 의미와 상처 같은 것이 굳으면 생기는 것을 ‘딱지’라고 한다. 그렇게 껌딱지는 ‘자녀’를 뜻하는 신조어가 되었고 사전에는 없다. 이런 식은 곤란하다. 짜장면이나 짬뽕과는 다른 이야기다. 국어사전에서 ‘껌딱지’를 찾았을 때 「자녀, 혹은 소중한 사람을 뜻하는 명사」라고 표기되었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울 지를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언어 선택은 신중해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얼마 전 소설가 몇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데, 다른 테이블에서 젊은 여성 하나가 ‘다음에는 껌딱지들 떼놓고 우리 재미있게 놀아요.’라고 하는 말을 듣고 놀라는 필자의 모습을 보고 일행 한 분이 ‘요즘은 다 그래요. 나쁜 뜻이 없으니 괜찮아요. 혹보다는 낫잖아요?’라고 했다.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뜻이 나쁘지 않다면 굳이 이런 부정한 의미의 비유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껌딱지들을 떼놓아야만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는 도대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성가시고 힘든 일임에는 분명하다. 아이가 힘들게 할 때마다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고 무심결에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 어머니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힘들게 하는 아이가 사라지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부를 수 있을 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이름을 아끼지 말고 자주 불러 주는 것이 옳다. 시간이 더 흐르고 흐르면 당신이 애타게 불러도 대답하지 못할 만큼 바빠지거나 당신을 ‘혹’이나 ‘껌딱지’로 여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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