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신(處身)의 미(美)
처신(處身)의 미(美)
  • 승인 2017.12.1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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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지난해 가을부터 정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고위급 인사들 중 유일하게 불구속 상태였던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검찰의 다섯 번째 소환과 세 번째 영장 청구 끝에 결국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은 15일 새벽 우 전 수석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권순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권 부장판사는 “혐의사실이 소명되고 특별감찰관 사찰 관련 혐의에 관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검찰의 해양경찰청 서버 압수수색 당시 수사팀 간부에게 우 전 수석은 전화한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지만, 단순히 상황 파악 차원에서 통화를 했을 뿐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물론, 당시 검찰과 해경이 압수수색을 놓고 갈등하는 상황을 보고 받은 뒤에 통화를 했지만 청와대로서 조정하거나 조치를 취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던 사실이 있다. 과연 그는 ‘황제’였던 것 같다. 과연 우리 중에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사 앞에서 팔짱 끼고 환히 웃으면서 조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외에도 기자들을 향한 그의 시선과 태도를 두고도 많은 말들이 오갔다. 소수 특권층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미운 털’이 박혀 버린 그였지만, 그는 유일하게 수사 그물에 걸려들지 않은 월척이었지만, 이번에는 용케 구속이 가능하게 되었다. 국민의 뜻은 이리도 준엄하고 무섭다.

물론 구속이 되었다고 해서 유죄가 확정된다거나 가중처벌을 받는다는 확신을 갖는 건 아니다. 그가 가진 인맥과 권력을 총 동원하여 그가 또 한 번의 묘기를 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온 국민의 공분(公憤)을 자아낸 대가가 얼마나 집요하고 오래갈 수 있는 지 전혀 그는 모르고 있다. 무엇이 그에게 당당한 눈빛과 태도를 가능하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

‘도리를 다한 후에 처신을 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도리(道理)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뜻한다. 남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거나 손괴를 가하면 거기에는 책임과 처벌이 따른다. 책임은 도의적인 부분을 의미하지만, 처벌은 적법한 구형을 의미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본인의 자존심이 다칠지언정 당연히 받아야할 양심의 가책을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도리이다. 피해를 본 이에게 성심을 다해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도리다. 그런 후에 본인의 입장과 사건에 관한 소명이 뒤따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처신을 잘 해야 하는 시점이다. 특히 국가의 녹봉(祿俸)을 받아서 생활하는 이들은 더욱 더 처신을 잘하여 타의 모범을 보여야만 한다. 더 나아가 그럴 자신이 없으면 관직에 나설 엄두조차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각종 고시를 어렵게 치러서 합격을 했다고 해서 나랏일을 쉽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국민들의 명을 받아 국민을 대신하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 정책을 의결하는 국회의원들도 임기동안 한시적인 명예직으로서의 자리만 지켜낸다면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처신(處身)은 다른 표현으로는 ‘몸가짐과 행동’을 뜻한다. 처신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處)해지게 된다. 앉아야 할 자리에서 서 있거나, 서 있어야 할 곳에서 누워 있으면 이는 부적절한 처신이다.

시험을 치르는 자가 답안지를 미리 공개하지 않는다고 요구하면 부당한 처신이다. 부정한 자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엉뚱하게도 ‘나보다 더 잘못한 사람이 많은데, 왜 나를 조사하느냐’고 불만을 표현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법원이나 검찰에서 해야 할 일이고, 죄의 유무를 따져 죄가 없다손 치더라도 성실하게 조사에 임해야 한다. 그런데, 일상에서도 처신을 바로 하지 못한 자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과는 거리감이 있다. 전자는 잘못한 부분이 분명 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몰아세울 일이 아니라는 의미인 셈이다. 즉 징벌의 경중을 다투는 부분이다. 그 전에 피해자가 정부의 대처를 믿고 따른 국민들이라면 과오의 인정과 사과가 앞서야 한다. 고위공직자들이 검찰청 앞에서 조사받기 전에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최소한의 형식적인 처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우 전 수석에 대해서는 유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동안 그가 처세에 능했다는 오해를 이번 수사에서 명백하게 정의의 수단으로 잘 풀어냈으면 좋겠다. 내친 김에 누가 보더라도 성역 없는 공정한 수사였다고 끄덕일 수 있는 결과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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