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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최후의 만찬

기사전송 2018-01-07, 21: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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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해마다 똑같다.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여기저기서 날마다 회식이다 뭐다해서 거나한 술자리들이 잦다. 올해는 특히 대구경북권의 체감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많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인정(人情)은 그렇지 않나보다. 작년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지 못하겠다. 외식업 쪽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역대최장의 추석연휴 탓에 타격을 받았던 터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맘때면 ‘최후의 만찬’이 떠오른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당시 예수의 배신자 ‘유다’를 건너편 혹은 아예 배제해버린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당당하게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배치한 다 빈치의 기발한 해석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만찬의 해석은 숭고한 의미와 더불어 성화로서의 기능성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우리들의 만찬은 해가 뜰 때까지 지쳐 쓰러지는 처절한 몸부림일 때가 많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새벽에 거리를 걷다보면 영하 5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무리로부터 소용가치가 떨어지거나, 독립되어 떨어져 나온 만취한 병사들이 비틀대며 도로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쉽게 본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쯤 되면 술자리 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요즘은 억지로 술을 권하는 이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이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예의가 지켜지기까지 수십 년, 아니 그 이상 걸렸던 것 같다. 필자도 술을 잘 못 마시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약자(?)를 잘 이해하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부디 애주가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와 배려를 부탁드리면서 세 가지 소통의 약속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억지로 술을 권하지 마라. 앞서 이 부분은 요즘 잘 지켜지고 있다 하였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마실수록 주량이 는다.’.‘나도 옛날엔 그랬지만, 지금은 잘 마신다.’라는 말로 현혹하려 들지 마라. 마시고 싶으면 마시게 되어 있다. 물론 술을 마실수록 늘 수도 있지만, ‘죽을 수’도 있다. 나만 취하고 상대가 멀쩡하면 혹시 흉이 될까 두려운가. 걱정할 것 없다. 기억할 사람은 만취한 사람도 다 기억한다. 아예 실수를 할 생각을 안 하는 게 맞다. 마치 술 먹으면 반드시 실수를 해야 하는 것 같은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술 취해서 실수가 허용되는 건 딱 두 가지 뿐이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와 커지는 목소리다. 성희롱이나 폭력 등은 술을 빙자해서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둘째, 마치는 시간을 명확히 하라. 특히 신입사원이나 각종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이 회식이 언제 끝나지?’이다. 본인들의 과거를 생각해보라. 상사들의 식상한 노래들을 매번 들으며 다음 날 출근해서 밀린 업무들 걱정을 하지 않았던가. 무엇이 그리 즐겁겠는가. 어쩌면 당신과 마주한 직원 중에 온통 홀로 남은 노모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지금의 시간이 그만큼 값지고 소중한 시간인지 돌이켜보고 기왕이면 명확하게 시간을 정해두는 것이 서로에게 배려가 될 수 있다.

셋째, 조용히 얘기하라. 술을 마시다보면 주의가 떨어지고 일시적이지만, 청각에 마비가 와서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점점 본인의 목소리도 커진다. 그러다보면 엉뚱하게 옆 테이블의 객들과 시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반복해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다보면 무의식중에 상대가 반발을 할 수도 있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냐고 역정을 내기도 한다. 술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는 부류들은 대개 유년기에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폭력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병따개를 앞에 두고도 탁자로 ‘꽝’쳐서 겨우 술 한 병 따는 걸 재주랍시고 부린다. 주위에서 얼마나 눈살을 찌푸리는지조차 모른다. 어렸을 때 무시를 당하거나 부모로부터 심한 폭언과 폭행을 겪은 이들이 안타깝지만, 성장하면 이리 될 가능성이 높다. 본인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개선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격리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술자리는 ‘치외법권’의 성지(聖地)가 아니다. 모든 게 용서된다는 관용을 기대하는 이들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정신을 차려 줘야 한다. 넘어진 여직원을 일으켜 세워준답시고 슬쩍 가슴을 스친다든지 여흥의 시간에 엉덩이를 더듬는 교활한 이들이 있다. 정말 모를 것 같은가.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이 기대한 그 관용이 족쇄가 되어 당신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은 그들이 침묵하지만, 언제 문제 삼을지 모르는 지뢰들을 당신 스스로가 뿌려두고 있는 거라고 여기면 틀림없다. 당신의 아내와 여동생이 똑같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건전한 음주문화와 화합을 위한 자리가 ‘최후의 만찬’이 되어 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부디 필자의 우려가 기우(杞憂)에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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