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
  • 승인 2018.01.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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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대학원 아동문
학과 강사
‘노인은 바다를 언제나 La Mar라고 불렀다.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쓰는 스페인 말이다. 노인에게 바다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고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그 무엇이었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는다. 돌아보면, 지금 일선에서 뒤로 나앉은 노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는 지침서만 같다.

노인들은 젊은 날, 바다 같은 일터에서 청춘을 바쳤다. 지금은 눈귀 어두워지고 기억력과 관절이 나빠지니 마음이 하고 싶은 일을 쫓아하기 두렵다. 하지만 50세에는 천명(天命)을 알고, 귀가 순해지는 60·이순(耳順)에는 원만한 생각으로 어떤 일이든 두루 이해하고 70세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르는 것이 늙음의 도라 하신 공자님 말씀을 따라서 도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백세 시대다. 2017년 2월 정부 인구 통계자료를 보면 90~99세 남녀 인구가 180만505명이요 백세 이상도 17만843명이라 한다. 하니, 백세 시대에 ‘내 나이가 어때서’하는 긍정과 용기로 살아야 한다. ‘노인과 바다’ 책 속의 노인이 혼자 고래잡이를 떠나는 도전 정신을 본다. 84일이나 걸려 잡은 고래를 상어의 습격을 받아 고래 뼈만 가지고 돌아오더라도 허무하지 않다. 고래를 잡았던 그 순간의 기쁨을 가슴 가득 담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파도가 밀려와 물거품으로 부서져버리더라도 노인은 내 삶이 부서져 사라지는 물거품이요. 부평초라고 슬퍼할 일이 아니다. 부서져버린 것은 물거품이요. 파도이지 바위가 아니다. 바다 같은 세상에서 노인들은 바위처럼 자기 삶을 껴안고 의연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평생을 생계에 매달려 살다가 89세에 최고령으로 하버드를 졸업한 메리 파사노도 그랬다. ‘나는 75년 만에 내 꿈을 이루었다. 더 이상 사회에서 중요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어도 놀이에 참여하고 창조성을 발휘하며, 새것을 배우고 새 친구를 사귀니,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즐겁다’고, 또한 배우이며 작가요 심리상담가인 스콧 멕스웰도 83세이지만 ‘나의 70대는 매우 즐겁고 평화로웠으며, 80대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만 안다면 노년은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라고 철학자 세네카도 한 말씀 하셨다.

노년은 희망으로 빛나는 황홀한 세계다. 멋없이 노인 혼자 고독하게 바다로 나가기보다 손주나 아들, 이웃 아이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면 서로에게 더 즐겁고 황홀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은 고래잡이에 소년을 데려가지 않았다. 헤밍웨이가 이런 늙음의 품위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소년 마롤린을 바다에 데려가지 않고 떼어 놓았을까? 여기에 헤밍웨이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가 숨어 있는 듯하다. 할아버지를 따라 바다로 나가지 않은 소년은 고래 뼈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노인들에게도 이르는 말일 것이다. ‘매사에 도전하며 사는 것도 품위 있는 늙음이지만 고래를 잡으러 가든, 물놀이를 가든, 될 수 있는 한 젊은 세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라고.

814명을 70년간 전향적으로 추적 조사한 자료를 정리한 ‘하버드대학교, 인생성장보고서-행복의 조건’ 이라는 책에서 품위 있게 나이 드는 사람들의 예를 봐도 그렇다. 손주들을 돌보고 내리사랑을 나누는 일이, 여력으로 남을 보살피는 사회적인 기여도측면에서도 품위 있게 나이 드는 으뜸 과업이라 했다. 요약하면 ‘행복한 노년의 진짜 비결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데 있다. 봉사를 통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이들의 삶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삶에 대한 끊임없는 흥미를 얻게 되며 그 보답으로 주위 사람들의 사랑까지 되돌려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삶의 자잘한 고통을 기쁘게 감내하며 유머감각으로 여유를 즐기고 스스로를 잘 관리해가며 남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정신 건강이 행복하게 늙는 비결이라는 뜻이 녹아있다. 버클리대학교의 인간발달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노년으로 갈수록 정신 건강은 더 좋아진다고 한다. 나이 들수록 뇌세포 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자 경험에 따라 다르며 정상 뇌세포 감소량은 적절한 가지치기 정도로 여기면 된다고 한다.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남의 공감을 불러오는 지혜도 세월이 가야 체득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 들수록 더 지혜로워질 것 같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갈 노인들에게 지혜롭게 생각할 노년의 꿈은 한결 같을 것이다. ‘평화롭게 죽는 것!’ 그러기 위해서 마지막 기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죽음을 담담하게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선물 받는 하루하루를 두 손으로 받아 가슴 가득 품고 젊은 시절보다 더 즐거운 일을 찾아 만들며 멋진 휴가의 마지막 날을 즐겨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도 빛나는 해를 볼 수 있고, 내 옆에 소중한 사람이 머물러 있고, 가 볼 곳이 있고 해보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이 있으니 즐겁고 신나고 축복 받은 시간이다. 늙음의 시간 속을 행복 충만한 마음으로 걸어가면 먹구름 뒤쪽에서라도 황홀한 빛살이 비치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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