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와 아이디드(I Did)의 차이
미투(Me Too)와 아이디드(I Did)의 차이
  • 승인 2018.03.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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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미투라는 말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도저히 터질 것 같지 않던 실마리가 한 번 터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연화(連火)를 거듭한다. 처음에는 미국의 영화제작자인 와인스타인에게 당했다는 여배우의 폭로가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장이 여배우들의 검은색 미투 복장으로 가득 차버렸다. 미국의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던 와인스타인은 수 십 년 동안 독재적인 리더십으로 여배우들을 농락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뒷전으로 물러났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 여배우들이 자신의 신상에 관한 문제를 털어놨다는 사실 앞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기에 문제가 커진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위압과 강압에 의해서 표출된 것이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먼 나라 미국에만 그친 게 아니다. 어느 나라나 배우들에 대해서는 성문제와 관련하여 관용적인 면이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에서 터진 미투 봇물은 권력의 상징인 검찰에서 나왔기에 그 파장이 더욱 커졌다. 통영지청에 근무하는 여검사 서지현이 법무부 검찰국장 안태근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구체적 사실을 SNS를 통하여 밝히자 발칵 뒤집힌 것이다. 이에 호응하여 다른 여검사까지 “나도 당했다”고 나섰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인 고은, 연극계 이윤택, 배우 조민기, 오달수 등등 헤아릴 수없이 많은 인사들의 실명이 고발대상에 올랐다. 만화가 소설가 서양화가 사진가 등 예술계 전반이 성추문에 휩싸였다.

그리고 국민들의 뒤통수를 친 것이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폭력 폭로다. 사전에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던 안희정사건은 천지돌출로 터져 나왔고 너무도 팩트에 입각한 폭로여서 안희정으로 하여금 입조차 달싹하지 못하고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봉주의 성추행을 현직 여기자가 폭로하고 국회의원 민병두 역시 옛날 일이 불거지자 의원직을 내던지는 초강수로 맞서고 있어 한국사회가 온통 ‘성 우레’를 맞고 있다. 참으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추문의 연속이다. 심지어 종교계에서 가장 점잖다는 평가를 받는 천주교 신부가 자원봉사 여성을 추행했다고 해서 주교회의가 정식으로 사과를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어 이 사태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못내 걱정이다. 물론 남성위주의 사회적 추세 때문에 약자인 여성들에 대한 성적인 희롱이 죄악시되지 않았던 전 시대적 사고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이 문제가 쉽사리 고쳐지리라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지도층에 있는 인사들이 너무나 쉽게 여성들을 함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조는 즉각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잘못된 문화다. 그것이 마치 남성의 특권이기라도 한 양 자랑하기도 하고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있다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이번에 망신한 사람들의 처지로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 이 사태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불어온 바람이지만 “나도 당했다”는 의미를 가진 Me Too가 대유행이고 위드유(with you)는 피해자에 동조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당한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종교계에서는 입만 열면 참회하고 반성하라고 타이르지만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자진해서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자진 폭로하는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투를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가냘프다. 그들은 견디다 못해 온갖 수모를 참고 스스로 감췄던 사실을 털어 놓는다.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사회적 치부를 청소하고 도덕적인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시킨다는 각오가 없이는 용기를 내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앞에 나설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내가 했다”고 스스로 자백하는 일이다. 미투가 영어니까 이것도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I Did”정도가 될 성싶다. 아이디드가 남성들의 입을 통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계기는 서지현 검사처럼 독한 마음을 먹고 세상을 깨끗이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자기를 죽이는 일이다.

그러나 사는 길이다. 움츠리며 감추려 하다가 미투에 걸리면 더 이상 빠져 나올 길이 없다. 지금까지 전개되어온 과정이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지 않는가. 미투와 아이디드는 종이 한 겹 차이도 못된다. 누가 먼저 용기를 내서 자신을 까발려 놓느냐에 따라서 죽은 것 같지만 훌륭하게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여성을 가리켜 예전부터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라고 했다. 이번에 보여준 한국여성들의 불길 같은 외침은 왜장을 껴안고 남강 의암을 뛰어내린 논개의 의기와 3.1만세를 부르며 왜경의 총칼에 맞섰던 서슬 퍼런 유관순의 결기를 보는 듯하다. 이제는 백절불굴의 사나이들이 나서서 용감하게 아이디드를 외치며 스스로를 털어 보여주는 깨끗한 사회의 전조(前兆)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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