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평화로운 세상 바라는 소망
전쟁·폭력 고발한 사진
여성·아이 피사체로 등장
퓰리처 수상작들 많아
희생자의 절실한 평화 호소
전쟁과 폭력을 고발하는 사진들 중에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한 사진들이 많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1972년 종군기자 닉 우트가 찍어 베트남전의 참상을 세상에 널리 알린 ‘네이팜 소녀’ 킴푹의 사진이 있다. 네이팜탄의 불길이 붙은 옷을 벗어던지고 거리로 뛰어나온 이 소녀는 이제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 50대에 접어든 여성이고 1999년에는 유엔평화친선대사가 돼 한국에 방문한 적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마크 리부의 ‘꽃을 든 여인’은 더욱 상징적인 사진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1967년 워싱턴 펜타곤 앞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 현장을 보여주는 이 한 장의 사진은 한 소녀가 총을 든 군인들에게 꽃을 주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사진은 곧 반전과 평화의 아이콘이 됐고, 군인과 소녀, 총과 꽃, 죽음과 삶을 강렬하게 대비함으로써 평화의 가치를 두드러지게 강조했다.
최근의 퓰리처 수상작을 봐도 여전히 여성과 아이들이 사진기 앞에 암울한 피사체로 등장한다. 이들은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들로서 역설적으로 평화를 호소한다. 세계의 역사 곳곳에서 이미 소녀상이 기억과 기록 속에 새겨져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인류의 역사를 보고 또 겪어야만 하는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프랑스의 시인 루이 아라공처럼 “여자는 인류의 미래다”라고 노래해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말없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거부하는 일본의 집권세력과 역사의식이 결여된 우리 정부의 관료들이나 정치가들이 평화의 소녀상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들끼리의 교섭과 합의로 이 평화의 아이콘을 단 하나라도 철거하도록 놔둬야 하겠는가? 소녀상은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또한 우리의 미래를 담고 있다. 대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염원을 표명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