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와 오삼불고기
빗소리와 오삼불고기
  • 승인 2016.08.3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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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박순란
박순란
학부모
아이들이 크면 자기 할 일 잘 하고, 대화도 더 잘 되고,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들과 소통이 더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로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거나, 화난 황소처럼 콧방귀를 뀌고 일그러진 얼굴로 틱틱거리기 예사다. 중1때 아들이 가정시간에 사춘기뇌가 자기 맘대로 안 되고, 붉으락푸르락 한다며 자기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했다.

중1만 되면 이상해지는 아이들을 상대하기엔 나의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이 되고, 아이들이 점점 미워졌다. 중3이 된 아들과 무덤덤해진지 오래되었어도, 중1된 딸과는 얼굴 마주보고 말하면 싸움이 났다.

그런데 중1된 딸이 학교에서 가족행복카페 안내문을 갖고 왔다. 딸과의 토요일 함께 시간을 가지며, 감정코칭을 배워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신청을 했다. 그런데 첫 번째 토요일 딸이 학교 1박 2일 캠프가 있어 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첫날부터 빠지면 그 다음날도 가기 싫어지는 법이라, 중3 아들을 설득했다.

실랑이를 할 줄 알았는데 중3 아들이 쉽게 허락하여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갔다. 오래간만에 둘만의 동행이 싫지가 않았고, 각각의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소감을 얘기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재미있었고, 여기 신청해 준 엄마가 고맙다고.

아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고, 그동안 잊었던 사랑이 싹텄다. 둘이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니 데이트하는 기분도 들었다. 키가 나보다 크고, 제법 남자티가 났다. 그런 시간을 갖고 싶어 아들과 둘이 계속 감정코칭을 오고 싶었고, 아들도 선뜻 동의했다. 장점말하기, 손등에 로션발라주기 등의 활동은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고, 따뜻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아들이 아기였을 때 그토록 예뻐했던 눈빛과 마음이 되살아나 하루하루 행복했고, 토요일 아침을 기다렸다.

집에서 아들과의 대화에 부드러움과 따스함, 공감의 기운이 넘쳤다. 나름 엄마로서 미안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래도 바르게 자라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기회도 되었다. 아들도 잘 키워주어 고맙다고 하여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감정코칭후 관계가 매우 부드러워졌고 친근감이 생긴 후 1박 2일 해양가족캠프 일정이 나왔다. 감정코칭을 같이 하지 못한 딸은 결사적으로 해양캠프를 가고 싶어 했고, 아들은 덤덤했다. 그러나 함께 가기로 했고, 옷, 세면도구, 먹거리 등을 함께 준비했다.

텐트에 짐을 두고, 통구밍보트를 함께 타고 노를 저으며, 비오는 강위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함께 보고, 수영도 하였다. 비에 흠뻑 젖듯 웃음과 즐거움이 온 몸을 적셨다. 피로도 잊고 저녁준비를 계획했다. 내가 오삼불고기를 준비하려고 나가니 비가 많이 왔다. 딸이 비옷을 입고, 내가 요리를 할 동안 우산을 받쳐 주었다. 빗속에서 요리를 하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는 그 순간 불편함도 잊고 즐겁게 요리를 했다.

우산위로 빗소리가 후두둑후두둑 들리고, 프라이팬에서는 지글지글 오삼 불고기가 익어가고, 아들은 텐트를 정리하고 저녁 먹을 자리를 만들고, ‘내가 왜’, ‘싫은데’를 밥 먹듯 외치던 중1 딸은 나와 오삼 불고기가 비에 젖을 새라 내 옆에 딱 붙어 우산을 씌어주는 그 순간 내 가슴에서도 뭔가 말할 수 없는 것이 차올랐다. 그것이 행복일까. 사랑일까. 감동일까.

일상으로 돌아온 아이들과 나는 다시 작은 말다툼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밉지도 불안하지도 화도 나지 않는다. 분명 나와 아이들에게 작은 변화가 있다. 감정코칭과 1박 2일 해양캠프로 180도 달라지고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화한 사진이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듯, 아이들도 지금은 1박 2일이 벌써 잊혀진 시간으로 여기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시간이 가슴으로 다가와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 시간으로 인해 자신이 변화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느끼지 못하면서 어느 샌가 변화된 자신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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