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달빛어린이병원에 대한 고민
<의료칼럼> 달빛어린이병원에 대한 고민
  • 승인 2016.10.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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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세상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오해받는 일이 생긴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달빛어린이 병원 사업을 반대하는 의료계가 바로 이런 곤란한 경우에 처해있다.

애를 키우는 부모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달빛어린이 병원이란 제도는, 소아 경증 환자의 불가피한 야간 응급실 이용 불편 해소 및 응급실 과밀화 경감을 위해 평일 오후 11~12시, 휴일 오후 6~10시까지 매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진료하는 것으로 2014년 도입되었다. 밤에 어린이들이 아플 때 야간진료가 가능한 소아과병의원을 만들자는 좋은 취지이다. 야간에 열나거나 콧물 나는 경증 질환을 진료받기 위해 응급실의 불편함을 경험해본 부모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반가운 일인 것이다.

제도 도입 시부터 여러 차례 공모를 거쳐 달빛어린이병원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고 있지만, 의료기관의 호응이 높지 않아 전국에 11개 병원만이 운영 중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에는 한 곳도 없고 수도권 전체를 통틀어 경기도에도 두 곳뿐이며, 대구에도 한 곳뿐이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달빛어린이병원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동네 병·의원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낮 진료를 하는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의 환자가 급감할 것이라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사회와 대한소아과학회 등 관련 의사단체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한 탓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최근 새롭게 ‘달빛어린이병원 개편 방안’을 내놓고 본격적인 정책 추진을 예고했다. 개편안에는 달빛어린이병원 참여기관 문호를 전면 개방하고, 의료기관에 금전적 혜택을 대폭 늘리는 등의 당근책이 대거 포함됐다.

그러나 당사자인 소아청소년과 개원가가 벌써부터 달빛어린이병원 사업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특정 사업자단체가 달빛어린이병원 참여 기관의 의료진 채용 방해, 항의전화, 소속단체 강제탈퇴, 보수교육 제한 등의 행위를 할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음을 밝히고 다양한 경로로 의료계를 압박해오고 있다.

야간에 아픈 어린이와 부모의 고충을 해결하겠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공감하는 좋은 정책에 대해 의료계가 이토록 극심한 반대 입장을 고집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원만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이상 이 사업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정부와 여론의 압력에 내몰려 달빛어린이사업에 참여한다면 의원급의 원장들은 휴일도 없이 하루에 16시간의 이상의 노동에 내몰려야 한다.

삶의 질도 문제이지만 치솟는 인건비나 경영부담은 오로지 개원한 원장들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야간진료의 확대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희생을 사회적으로 강제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고, 이 같은 사회적 강제를 요구하는 정부가 오히려 압박수단으로 으름장을 놓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아청소년과개원가는 개인이 운영하는 병의원이 대다수이다. 사기관이 떠맡기 어려운 야간진료 같은 의료 공백은 공공의료에서 해답을 찾는 편이 현실적이다.

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야간 소아과 센터를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해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본다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진정성 어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빛어린이병원 사업이 표류하는 근본 이유는 진료보조금이 충분한가, 진료시간이 얼마나 연장되는가, 의사들이 야간에 아픈 어린이들을 외면할 만큼 비도덕적인가 등등이 아니다. 핵심은 한마디로 정부의 소통 부재의 독선적인 태도요, 정책 마인드 부재이다. 최근 정부가 입안하는 의료 정책마다 그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일방적인 정책 수립, 의료계 반발, 정부의 강행,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진행과정은 놀랄 만큼 대동소이하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정부가 허울 좋은 개편안을 해결책인양 내놓고 일방적으로 따르라는 식의 행정중심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귀를 열어 당사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 눈높이에서 고민하며 환자와 의료계를 잇는 소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취지는 좋으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달빛어린이병원 개편 방안’을 강요받고 있는 의료계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깊어만 가는 의료계의 고민이 공허한 넋두리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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