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의 가려진 속내
실손보험의 가려진 속내
  • 승인 2016.10.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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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마크원외과 원장
‘보험료 동결’.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수가를 결정하는 최종 관문은 의료공급자 단체들과 건강보험공단, 그리고 의료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보험가입자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다. 통상적으로는 각 이해 당사자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한 난상토론으로 매번 두세 시간은 훌쩍 넘기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지난 6월말의 회의는 불과 40여분 만에 이례적으로 조기 종결됐다. 이날 회의 주요 안건은 ‘건강보험료 인상률 0%’를 통한 보험료 동결이었다. 건강보험은 이미 17조원 가까운 누적 흑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보험료 동결과 더불어 ‘보장성 강화’ 또한 병행한다는 방침에 아무도 이견을 제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보험료를 더 내지 않고도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명제에 대한 공통된 의견이 수렴된 결과였다. 현재 논의 중이거나 이미 확정된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는 산전초음파를 포함한 초음파진단료 급여화와 수면내시경 비용의 급여화 등도 포함된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이야기만 했다 하면 또 하나의 보험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바로 실손보험이다. 10년 전 실손보험이 출범할 때 내세운 역할은 건강보험이 보장해주지 못하는 의료행위를 민간보험을 통해 ‘원하는 국민에 한해서’ 추가 보장을 해주도록 하자는 자본주의 개념에 기초한 ‘보조 장치’였다. 실손 보험 출범 당시 정부의 의료산업선진화 위원회는 실손보험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와 수준을 제한하라는 것도 그러한 원칙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험회사들은 정부가 제시한 원칙은 완전히 무시한 채 자기네들의 원칙에 충실했다. 보험 원리에 부합하지 않은 것까지 보장 항목에 포함하고, 진료비 본인 부담 전액을 보장하는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상품을 당연히 제한하고 관리 감독했어야 할 의료산업선진화 위원회와 정부, 그리고 실무 금융당국들은 이를 방조했다.

불과 출시 10년 만에 전체 가구의 약 80%가 민간실손보험에 가입해서, 국민건강보험료보다 더 많은 실손보험료를 내는 이 모순 덩어리 나라는 이렇게 첫 발을 내딛었다. 이 정도로 실손보험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의료기술을 다 감내하여 보장해 줄 수 없는 전 국민건강보험의 태생적 한계와 그러한 약점을 파고든 민간보험회사의 시의 적절한(?) 장수 수완이 있었다.

시작부터 제멋대로였던 실손 보험의 계속되는 질주는 금융당국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방조 하에 점점 더 횡포의 강도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일례로 국민건강보험이 보유한 국민의 개인질병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핑계는 환자들이 의료기관에서 관련 서류를 직접 때어 오는 불편함을 해소한다는 것이지만 속내는 그 환자의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개인 질병정보를 샅샅이 뒤져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보류할 빌미를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실손 보험의 진료비 심사를 대신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 발생한 진료비를 기준으로 보상해주는 실손 보험은 당연히 진료비 심사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 보험사들은 이런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상품을 관리할 능력도 없으면서 판매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뒷수습을 공공기관에 떠넘기려 하는 태만한 모습이다. ‘많이 팔아서 많은 가입자를 우선 선점한다’는 장삿속으로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은 것까지 보장 항목에 포함해서 상품을 팔아치울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국민건강보험을 근거로 하여 의료보험 원리에 부합하지 않으면 환자 본인부담금을 지급하지 않고 본인들의 손해율을 낮춰보겠다는 심산이다.

실손 보험으로 인해 국민의 피해가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불어날 부분은 또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 액수가 줄어들었지만, 그 혜택을 가입자에게 전혀 돌려주지 않고 있다. 이렇게 올린 불로소득만 자그마치 2조50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사는 실손 보험료로 이익을 남기고,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이루어진 보장성 강화를 통해서도 이익을 남기는 이중의 수입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실손보험 가입자, 국민건강보험, 국민이 모두 실손보험의 호갱이다.

따라서, 현재 상태로는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억제하고 초음파 비용을 급여화하고 필수 진료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는 등의 정부와 의료계의 노력이 자신의 이익만이 최대 과제인 민간보험회사의 배만 불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민간의료보험과 관련한 구조적인 모순을 지워버리고 재설정하는 노력을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더불어 시행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 2의 의료보험이 머지않아 전 세계에 자랑하는 국민건강보험을 제치고 실질적인 제 1의 의료보험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며, 그때가 되면 정부는 국민들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정치·행정적인 수단을 통째로 민간기업에게 내어주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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