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봉다리
엄마의 봉다리
  • 승인 2016.10.1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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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박순란
박순란
학부모
희야는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전, 시골에 있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대구 언제 오노? 시골에는 언제 또 내려가노?” “모르지, 큰오빠가 데리러오면 대구가고, 제사지내고 나면 내려오겠지”

치매의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고부터 혼자 계신 친정엄마가 지내오던 제사를 큰오빠네가 갖고 갔다. 예전에는 명절준비하러 장에 가고 음식재료 다듬고 바빴는데, 작년부터는 오빠를 기다리는 일만 하면 되어 몸이 편해졌는지 모르겠다.

젊을 때의 마을의 여장부로 농사철만 되면 불려다녔던 엄마였다. 엄마는 아침밥을 새벽에 해놓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다가 들어왔다. 모심기, 사과꽃따기, 고추따기, 벼베기, 사과따기 등 철마다 하는 일은 달랐다. 민첩하고 재바르고 손 댈데 없이 깔끔하니 처리하는 엄마였다. 저녁을 먹고도 쉴틈이 없었다. 홀치기도 밤늦게까지 하고, 가마니도 짜고, 항상 말없이 일했다.

칠십이 되었어도, 쌀가마니 하나를 번쩍들어 나를 정도로 힘이 장사였던 엄마였다. 봄철에 사과꽃을 따러 품을 팔러 가기도 하였다. 칠십이 넘어서도 남의 집일을 하러 다닐 정도로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한 엄마가 다행이었다.

친정집에 가면 집은 거의 비어 있었고, 엄마는 밥때가 되어야 집에 왔다. 엄마를 찾으려면 회관이나 밭 중 한 곳을 가면 있었다. 생신때도 자식들이 많이 모이면 생일상차려 축가를 부르고 밥을 먹고 나면 밭일 가기에 바빴다.

희야의 아버지는 칠순즈음에는 엄마의 고생을 치하하는 말을 자식들 앞에서 자주 했다. 너 엄마 덕분에 이래 산다며, 너 엄마 고생마이 했다며, 아버지에게 술을 따라 드리면 꼭 엄마한테도 한 잔 따라드리라고 말했다. 그럴 때 엄마는 가슴을 쭉 편 공작새 같았다.

희야네가 친정에 갔다 대구로 올 때는 차 트렁크와 뒷자리까지 짐이 한 가득일 때가 많았다. 집과 밭에 있는 채소와 양식들을 엄마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봉지 싸 주었다. 참기름, 고춧가루, 마늘, 양파, 감자, 깻잎, 콩, 땅콩, 고구마, 무, 배추, 들깨가루, 된장, 간장, 쌀 등. 철마다 품목은 조금씩 달랐지만, 뒷자리에 앉는 아이들자리가 비좁을 정도였다.

그것을 갖고와 차에서 집까지 올릴 때도 한참이 걸렸다. 몇 번 왕복을 해야 했다. 집에 올려놓고도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가끔은 귀찮기까지 했지만, 남들은 돈 주고 사먹는 건데 하며 희야는 엄마에게 고마움을 가졌다.

그리고 항상 아이들에게 많지는 않지만 만원씩 꼭 쥐어주었고, 초등학교 아이들에겐 만원이 큰 돈이라 외할머니에게 여러번 인사를 했다.

그런데 엄마도 나이는 이기지 못하는 듯 언제가부터 건망증처럼 깜박깜박 무엇인가를 잘 잊어버린다고 했다. 자식들이 주고 간 돈도 어딘가에 넣어두고 찾지 못하고, 물건도 어딘가로 옮겨놓고는 어디갔냐고 찾기 여사고, 했던말을 금새 잊는지 또하고 또하고 무한반복했다. 그래서 농사일도 점점 줄이고, 제사도 오빠네가 가져갔다. 어느 시점부터는 살집이 꽤있었던 엄마의 체구가 날씬해졌다.

집에 가면 마당을 점령했던 고추며, 콩이며, 깨며, 땅콩이며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웠고 마당은 깔끔해졌다. 엄마의 체구만큼 집안에 넘치던 농작물들도 작아졌다. 집은 예전보다 깔끔해졌는데 뭔가 휑해졌다. 그런 엄마를 위해 희야와 형제들이 자주 엄마를 찾아간다.

이번 추석에도 엄마를 찾아가니 보름달만큼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였다. 집을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다. 엄마는 줄 것이 고춧가루밖에 없다며 한여름 뙤약볕에 따서 말린 고추를 빻은 고춧가루 한 봉지를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들에게 만원 주는 것도 잊었다. 아이들은 약간 서운한 듯 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짐을 내리는데, 고춧가루 한 봉지뿐이었다. 참으로 가벼웠다. 그러나 마음은 무거웠다. 엄마는 자주 말했다. 이젠 돈도 못 벌정도로 늙었다고. 젊을 때 일해서 돈벌라고. 그 때가 좋을때라고. 엄마의 야윈 몸과 줄어든 농사가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외할머니가 만원 안 주시니 서운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 자주 찾아 뵙고 맛있는 것도 사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서늘한 바람이 희야의 가슴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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