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저는 이름만 빌려줬는데 너무 억울합니다
판사님, 저는 이름만 빌려줬는데 너무 억울합니다
  • 승인 2016.10.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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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소송지원 변호사
문) 저는 섬유업을 하는데 어느날 저의 섬유를 매입하는 중간상인 甲이 자신이 사정이 있어 자기 명의로 사업을 하기 곤란하니 저의 명의를 빌려달라고 부탁하여 별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저의 명의를 빌려주었고, 이후 甲은 저의 명의로 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아 사업을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 乙, 丙이라는 사람이 저를 상대로 甲에게 물품거래대금을 받지 못한 것이 있다면서 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乙은 甲이 저의 명의를 빌려 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丙은 저와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乙과 丙에게 돈을 물어주어야 하나요.

답) 상법에는 거래의 안전을 위하여 외관존중주의라는 원칙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겉으로 표시된 사업자명의 및 이름을 신뢰하고 거래한 사람은 실제 누가 사장 또는 주인인지를 불문하고 명의자를 상대로 금전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법에 의하면 자기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하여 타인이 영업을 하도록 허락한 자는 자기를 영업주(주인)로 오인하여 거래한 제3자에 대하여 그 거래로 인하여 생긴 채무를 그 타인(이름을 빌려쓴 사람)과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즉, 법은 원칙적으로 이름을 빌려주면 이름을 빌려준 사람도 책임을 지는 것으로 하였고, 사업자등록증에 이름이 기재되면 실제로 본인이 그 사업을 하지 않아도 사업과 관련된 모든 채무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끔 법정에서 ‘판사님 저는 이름만 빌려준 것이 전부이고, 이 사업은 제가 전혀 하지도 않았고 이익금은 1원도 제가 가지지 않았습니다. 억울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판사님은 그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억울한 점에 대하여 공감하여도 판사님의 머리 속에서는 상법의 조문인 ‘이름을 빌려준 사람도 책임을 진다’는 내용만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당사자가 열심히 억울함을 설명하여 판사님의 귀에는 ‘판사님 저는 이름만 빌려준 것이 전부이고, 이 사업은 제가 전혀 하지도 않았고 이익금은 1원도 제가 가지지 않았습니다. 억울합니다’라는 말이 들리지만 그 말이 판사님의 뇌로 전달되는 과정에서는 ‘제가 이름을 빌려주었으니 제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라는 말로 자동으로 변형되어 전달될 가능성이 99%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이름이나 회사 이름을 빌려주었다가 소송을 당하게 되면 일반 상식에 의존하여 억울하다고 할 것이 아니고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다만, 상법은 ① 명의대여 사실을 알았을 경우 및 ② 약간만 주의하였다면 명의대여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명의대여자는 책임이 없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명의대여자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한 취지는 ‘외관을 오해한 자만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이 명의를 빌려준 경우에도 거래 상대방이 실제 명의대여사실을 잘 알고 있어 사업자등록증상의 명의자는 이름만 빌려준 사람이고 실제 거래자는 따로 있다는 사실 등을 잘 알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즉, 상대방은 속은 것이 없으므로 원래 자신이 알고 있던 거래 상대방에게만 돈을 받으면 되고, 명의대여자에게 돈을 받을 수 없게 하여도 억울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래 상대방이 명의대여사실을 몰랐다고 하여도 명의대여사실을 약간만 주의하였다면 알 수 있는 경우, 즉 상대방이 중대한 과실로 명의대여사실을 몰랐을 경우에도 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사례의 경우 乙에 대하여는 乙이 명의대여 사실을 잘 알고 실제 甲이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제출하면 乙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또한, 丙에 대하여는 ‘丙이 중대한 과실로 명의대여사실을 몰랐다’는 증거를 제출하면 책임을 면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알았다, 상대방이 알 수 있었음에도 중대한 과실로 명의대여사실을 몰랐다’는 증거는 그 승소의 혜택을 보는 귀하가 제출하여야 하고 그러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실제 상대방이 알았음에 확실하여도 소송에서 패소할 수 있고, 실제로 중대한 과실로 몰랐다는 증거를 제출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업에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므로 가급적 삼가야 하고, 같은 이유에서 다른 사람의 세금처리를 위하여 세금계산서를 대신 발급하여 주는 것,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본인의 명의로 서면을 작성하고 도장을 찍어주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므로 절대 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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