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불똥 튄 미술계
‘최순실 게이트’ 불똥 튄 미술계
  • 승인 2016.12.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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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 미술평론가
부동산 온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유통가는 거의 울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줄줄이 발표 중인 내년도 경제전망까지 온통 잿빛이다. 그야말로 장르와 분야 관계없이 한숨소리는 동일한 옥타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계 사정도 암울하긴 매한가지다. 장기적 플랜 없이 트렌드만 좇는 시장, 미학적, 예술적 담론 형성을 견인할 동력조차 희미한 탓에 곧 다가올 2017년도 어두울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여기에 상위 10여개 화랑이 매출액의 약90%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유통구조, 미술인 년 간 평균소득 600만원이 증명하는 만성적 빈곤, 이우환 및 천경자 위작사건에서 파생된 미술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도 새해 미술온도를 낮추는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나라의 향방을 안개 속으로 밀어 넣은 ‘최순실 게이트’야말로 미술계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드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시절이 하수상해서인지 아트페어는 파리만 날리고, 관람객 없는 전시회를 열어야 하는 작가들은 뜻하지 않은 피해에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미술계 구성원 중에서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가장 근심 많은 동네는 화랑가다. 최근 들어 그림을 사는 사람, 보는 사람도 부쩍 줄었다는 게 화랑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실제로 필자가 현장을 찾은 11월 12일 제3차 민중총궐기가 열린 광화문일대와 서울광장에는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들어찼지만 인근 지역인 인사동과 관훈동 소재 화랑들은 썰렁하다못해 을씨년스러움마저 감돌았다. 인적 없이 그림만 덩그러니 걸려 있는 화랑들이 적지 않았고, 북적거려야할 사람 대신 적막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런 현상은 같은 달 19일에 개최된 제4차 민중총궐기와 26일 진행된 제5차 민중총궐기 당일에도 유사하게 이어졌다. 시간상 촛불집회 열리기 전이었음에도 관훈동 일대 화랑들은 고요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12월에도 지속됐다.

사실 청와대와 인접한 서울 인사동, 관훈동, 광화문, 통인동, 옥인동 화랑들은 주말매출이 수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경찰 검문과 차벽으로 가로막힌 일대는 시민들의 유동을 차단했고, 전시장으로 발을 옮길 수 있는 길을 봉쇄했다.

때문에 해당 지역 화랑들은 거의 개점폐업과 진배없는 처지에 놓였다. 견디다 못한 일부 화랑은 아예 예정된 전시를 미루거나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랑도 화랑이지만 작가들 역시 최순실 파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싼 비용을 들여 전시를 열었지만 도무지 사람들이 오질 않아 행사를 망쳤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중이다.

실제로 최근 종로구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연 한 작가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최순실과 그 공범들로 인해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 가는데 누가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질 것이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누가 그림에 투자를 할 것인가.”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문제는 집회장소 지역이 아니더라도 결코 최순실 불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데 있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 잡은 모 갤러리 대표는 “즐거운 마음이어야 방문도 하고 그림도 사는데, 나라가 하도 어수선하다보니 손님이 줄어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보데갤러리’ 관계자도 “매출이 완전히 얼어붙었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연말임에도 불안전한 정국으로 인해 조용한 감이 없진 않다”고 말했다. 이는 최순실 국정농단 여파가 전국적임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심각한 건 탄핵정국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민심을 반영한 결과로 매듭지어진다면 모를까, 자칫하다간 미술계를 억누르고 있는 냉기가 보다 짙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연말연시를 앞둔 오늘도 근심과 걱정이 동시에 휘몰아치고 있다는 탄식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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