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데모’와 ‘광장민주주의’
‘중산층 데모’와 ‘광장민주주의’
  • 승인 2016.12.2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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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구 전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
이달 첫 주말 저녁, 중견 언론인과 광화문과 가까운 충정로 단골 호프집에서 통닭 한 마리를 안주 삼아 호프 2000cc에 소주 한 병을 타서 마시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 후에 열린 야당과 노동단체,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대통령 하야 촉구집회와 거리행진, 촛불행사 중계방송을 봤다.

그날의 집회와 행진·행사를 보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낀 소감은, 먼저 참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수십만의 인파가 모여서 한나라의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라고 하면서 아무런 충돌과 불상사 없이 행사가 물 흐르듯이 진행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두 번째는 대통령 하야에 대한 치열함과 절절함이 화면으로는 필자에게 그다지 전해오지 않았다. 그것은 데모가 폭력으로 치달아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반대하는 측으로부터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행사 주최 측과 참가자의 절제된 인내심 때문이었으리라. 특히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압도적으로 많아 국민들에게 낙인찍힌 ‘과격 폭력 전문 데모꾼’들이 평화집회를 망친 오명을 덮어쓸까봐 자제한 측면이 클 것이다.

세 번째는 집회 참가도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만 이상이 모이는 행사를 한 번도 아니고 주말마다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참가단체나 참가자의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같이 있던 언론인이 ‘데모의 경제’란 용어를 즉석에서 만들어 내고, 단순히 계산해서 참가자 1인당 총 1만원의 경비가 든다고 가정했을 때 주최 측이 주장하는 50만∼230만 명이라면 한 번하는 데 드는 데모 총비용은 50억∼230억 원이다. 우리 이야기를 듣던 주인아주머니는 “나도 저기 한번 가보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못가요. 애들 데리고 나온 여자들 보면 부러워요”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집회는 ‘중산층 데모’라 할 수 있다.

이번 데모의 결과로 주저하던 국회를 움직여 대통령 탄핵 의결을 이끌어 낸 데 대해 일부 진보언론은 ‘꽃피운 광장민주주의’라고 했다.

이번 ‘광장민주주의’ 성공(?)을 불러온 것은 무엇보다 일부 측근들에 의한 국정농단이 사실로 드러나는 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오만과 독선으로 무시한 데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실정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아야할 여당이 오히려 드러나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호도한 것이 사태를 더욱 키웠다. 거기에 더해 정부 여당의 오만과 독선, 소통부재, 무조건 충성에 대해 강력한 견제 역할을 하라고 국민들이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만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권에 눈이 어두워 최순실 게이트 발생 직후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통령의 실정과 그에 대해 견제 역할을 해야 할 국회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광장민주주의’는 2,600년 전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태어나서 약 200년간 이어지다가 사라진 정치체제다. ‘광장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던 것은 약 1,500명의 생산을 담당하지 않는 ‘시민’과 이들을 부양하는 대규모 ‘노예집단’(과거 조선의 노비와는 다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생산하지 않고 전문적으로 정치만 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국민들이 한시적으로 그 직위 부여한 지방자치의원, 국회의원 등 선출직 대의원이 있을 뿐이다. 이번 ‘광장민주주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기 또는 집단의 소득으로 광장에 참여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무한정 지속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대사회에서 광장민주주의는 지속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생업을 포기하고 정치행위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 탄핵의결 후 최종 결정은 민주주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그런데도 아직 ‘광장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헌법재판소 앞으로 주말마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모인다. 그러다가 양측이 충돌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다. 이젠 모두가 탄핵사태를 불러온 원인과 결과에 대한 처리를 ‘대의민주주의’에 맡기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물론 현재 여야가 벌이는 이전투구를 보면 전혀 미덥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못하면 선거로 갈아엎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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