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토끼, 진실이 은폐되다 - <슈퍼 토끼>
욕망 토끼, 진실이 은폐되다 - <슈퍼 토끼>
  • 승인 2017.03.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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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연예인 K가 있었다. 오래 전 한때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인물 좋고 실력도 최고였지만 어려운 환경에도 참고 견디며 피나는 연습으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그의 성장스토리가 나를 매료시켰다. 어느 날 친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K의 떠도는 소문을 전해주었는데 K가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인성도 그리 좋지 않다는 거였다. 벌써 소문은 마른 논두렁에 붙인 불처럼 젊은 엄마들 사이에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연예계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당시 K에게 푹 빠져 있었던 나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친구에게 버럭 화를 냈다. 할 일 없는 인사들이 모여 남의 사생활로 웃고 떠들며 가십거리로 만든 것이라며 내가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이 있는데 K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큰소리로 장담했다. 그 후 K에 대한 나의 관심은 심드렁해졌지만 그때 치밀었던 분노는 나조차도 뜻밖이라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그림책 <슈퍼 토끼>(시공주니어)가 있다. 작가는 독일 출생의 헬메 하이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캐릭터와 자유로운 선과 밝고 경쾌한 수채화풍으로 그는 독특한 유머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태를 풍자하여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야기의 대가이다. 토끼들의 우상이 된 토끼 한스가 주인공인 이 책은 부질없는 욕망과 어리석은 대중의 속성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한스는 짧은 토끼 인생에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까?’라고 생각하다가 다른 토끼들과는 달라 보이는 특별한 행동을 하기로 한다. 아침거리로 홍당무 대신 민들레꽃을 들기도 하고 물구나무를 서서 홍당무를 갉아먹으며 사팔눈을 뜨기도 한다. 그의 특별한 행동에 토끼들이 관심을 갖자 더욱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는데 오리처럼 물속으로 뛰어 들기도 하고 부엉이라며 높은 나무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기도 한다.

천운을 타고 났는지 한스는 번번이 죽지 않고 살아나 급기야 토끼들 사이에 아주 유명해져 슈퍼 토끼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토끼나라에는 슈퍼 토끼 한스를 따라하다 토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 한스는 한껏 고무되어 급기야 두 귀를 커다란 매듭이 생기도록 묶으며 자신을 과시했지만 귀가 생명인 토끼가 귀를 묶어 듣지 못했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마침내 그의 만용은 정점에 달해 여우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진정한 용기가 아닌 만용의 결과는 파멸임을 풍자하여 보여주는데 스토리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토끼들이 한스의 동상을 공원의 푸른 잔디 위에 세웠음을 보여주며 한 번 더 비틀어줌으로 독자를 폭소하게 한다. 대리석으로 된 그의 기념비에는 ‘헤엄도 치고 날기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는 슈퍼 토끼 한스’라고 쓰여 있다. 진실이 뭐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하는 대중의 어리석은 속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철회하였을 때 불편한 감정적 손상과 수치스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해서 그 선택의 관성을 유지 시켜 나가려는 우매함을 범한다고 한다. 시국이 시끄러운 요즘 논리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점을 끝끝내 바꾸지 않으려는 일련의 사람들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타인의 공감이며 인정이고 보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헛된 욕망에 눈이 멀어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정체성을 잃고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수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스타가 되어 활동하고 있지만 미디어에 비쳐지는 그들의 건강한 이미지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건지 의심의 눈을 뜨고 보게 된다. 부디 타인보다 자신에 집중하며 한스와 같은 비극을 맞지 않길 빈다. 한스의 기념비는 토끼나라 역사의 평가를 받으며 다시 세워져야 한다.

‘욕망을 쫓다 자신을 잃어버린 불쌍한 토끼 한스 여기 잠들다. 부디 거울로 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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