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동생의 정체는 구미호-<여우누이>
누이동생의 정체는 구미호-<여우누이>
  • 승인 2017.06.0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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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지금의 속도라면 옛날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MBC 라디오 드라마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방마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하여 성우의 내레이션 연기로 즐겼던 프로그램이다. 집집마다 TV가 없던 시절, 깜깜한 밤에 라디오 앞에 귀를 모으고 듣는 라디오극은 그야말로 온 국민이 즐겼던 문화였고 특히 ‘전설 따라 삼천리‘는 인성의 미덕을 가르치면서 또한 호러물로서 스릴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까마귀소리, 먼데서 우는 산짐승 소리, 바람소리, 빗소리, 말발굽 소리 등의 효과음과 혼신을 담아 전하는 성우의 연기, 특히 귀신의 대사 소리는 우리의 심장을 쫄깃쫄깃 쥐었다 폈다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이야기는 ㅇㅇㅇ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라는 중독성 있는 고정 멘트와 내레이션의 구성진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1965년부터 15년간 이어진 장수프로그램이었고 언론통폐합 이후에는 KBS에서‘전설의 고향’이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바뀐 후 정규로 지속되다가 후반에는 여름 납량물로, 2009년 이후 드디어 우리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전설의 고향’에서 단연 최고의 이야기는 ‘구미호’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안개가 낀 달밤에 무덤을 헤치거나, 사람의 피를 빨아 먹다 고개를 홱- 돌려 우리를 향해 ‘뭘 봐!’라는 메시지로 바라보던 정지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구미호’는 남성들을 유혹해 한을 푸는 여자 귀신의 대표다. 그래서인지 당시 ‘구미호’역으로 캐스팅된 여배우는 최고의 인기 여배우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캐스팅 자체만도 영광스런 일이었다.

‘구미호’가 나오는 그림책 <여우누이>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여우누이>는 옛이야기인 만큼 같은 제목으로 여러 출판물이 있지만 가장 최고의 그림책은 바로 보림에서 나온 이성실 글, 박완숙 그림의 <여우누이>라 꼽고 싶다. 이 그림책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어린 연령의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으로 너무 섬뜩하고 리얼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뚜렷하지 않은 인물들의 얼굴표정과 클로즈업된 인물들조차 놀라고 굳은 얼굴표정들이 더욱 책의 분위기를 긴장감으로 몰고 간다. 여기에 글의 내용조차 좀 세다고 해야 할까? “참기름을 잔뜩 바르고..소의 꽁무니에 손을 쓰윽 집어넣더니 간을 쓰윽 빼서 한 입에…”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다 들어 본 여우누이 이야기 내용인즉 이렇다. ‘자고나면 짐승들이 쓰러져 있는 걸 보고 누가 이런 짓을 하는가하고 지켜보라 아버지가 명한다. 첫째, 둘째는 잠이 들어 실패를 하고 막내인 셋째가 마침내 알아내게 되는데 그건 여동생의 정체였다. 여동생이 새벽에 방에서 걸어 나와 재주를 홀딱 홀딱 세 번 넘더니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로 변해 외양간에서 소의 간을 빼먹더란다. 아버지께 사실을 말씀 드렸더니 여동생을 모함한다고 오히려 쫓겨나게 된다. 절에서 지내다 스님의 도움으로 세 개의 호리병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하얀 호리병은 가시덤불, 파란 호리병은 물, 빨간 호리병은 불이 되어 여우누이를 물리치게 된다.

책을 읽어주고 나서 어린 독자에게 묻는다. “여러분, 여러분은 구미호를 물리칠 수 있나요?” 대개 우렁차게 “네!”라고 대답한다. 어려운 상황에도 지혜가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꼭 주지시켜 준다. <여우누이>를 읽으며 아이들과 나는 저 옛이야기 세계로 들어가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를 만나고 지혜를 발휘해 악을 완전히 물리치고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모험을 한 것이다. 이 행복한 결말이 아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긍정적 정서발달에 도음을 준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운 문제를 만난다. 나의 경우 가끔 코 앞에 닥친 어려운 문제들을 두고 ‘옛이야기가 허구로 지어낸 것만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구나!’라는 걸 느낀다. 그렇다면 ‘호리병만 있다면…’하는 간절함에 빠지기도 하는데 아직 호리병의 도움은 받은 적이 없으니 안타깝다. 아참, 불에 탄 여우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들리는 소문에는 여우의 재에서 피를 빨아먹는 모기로 탄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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