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듯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 <꽃 할머니>
꽃을 보듯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 <꽃 할머니>
  • 승인 2017.07.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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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배롱나무꽃도 피고 무궁꽃도 피고 있다. 화단엔 접시꽃, 채송화도 피고, 드물게 도라지꽃도 보인다. 앞서 한동안 담장을 뒤덮는 능소화의 매혹적인 자태에 확 빠져들었는데 여기저기 피어나는 자잘한 여름 꽃들로 요즘 마음이 옮겨졌다. 어느 꽃이 더 예쁘다고 비교할 수 없다. 꽃마다 자기 색깔이 있고 그 색깔대로 열심히 피어있는 모습이 소중하고 예쁘다. 그럼에도 여름이면 유난히 기다려지는 꽃이 있다. 바로 무궁화!

“무궁화?”. 여름엔 무궁화가 좋더라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놀라서 물었다. 의외라는 듯. ‘진드기도 많고 울타리 묘목으로 흔하게 심어진 그 무궁화가 뭐가 좋으니?’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누군가 무엇을 좋아 한다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소똥냄새를 맡으면 심신이 편안해 진다는 친구도 있었고, 사과 썩어가는 냄새가 또 그러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의외였지만 이유를 듣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년시절, 여름 땡볕에 친구랑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굣길, 소달구지를 만나는 날은 참으로 행운인 것이다. 주인의 눈치가 보여 걸터앉진 못하지만 무거운 가방만이라도 소달구지에 맡겨두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매미는 자지러질 듯이 울고 철퍼덕 철퍼덕 소똥은 떨어지고, 소똥을 피해 춤을 추듯 친구와 달리던 신작로. 무궁화를 보면 바로 그 시간이 떠오른다. 이렇듯, 꽃과 함께 행복한 유년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해야할까?

<만희네 집> <시리동동 거미동동>으로 잘 알려진 권윤덕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꽃할머니>가 있다.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그림책으로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또한 이 책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만드는 그림책 시리즈 ‘평화그림책’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꽃을 무척 좋아해서 꽃할머니, 꽃할머니는 열세 살 무렵 언니와 함께 나물을 캐러 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간다. 트럭에서 배로 옮겨져 며칠을 걸려 도착한 곳은 대만. 그곳에서 열세 살 꽃할머니는 차마 말 못할,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성폭력의 고통을 당한다. 바로 꽃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싫다고 반항하면 군인들이 때리고 몸은 엉망이 되어갔고, 한 번 당할 때마다 마음도 한 번씩 죽어 간다. 고통을 못 이겨 놓아버린 정신을 그나마 지탱해 준 것은 엄마가 매어주던 꽃댕기의 추억이었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르고, 전쟁이 끝나자 일본군은 꽃할머니를 버리고 떠났다. 만신창이가 된 꽃할머니를 누군가가 고국으로 데려와 절에 맡겨주었고 그곳에서 마치 소설처럼 동생을 만나게 된다...꽃할머니는 밤마다 무서운 꿈을 꾼다. 군인들이 달려들고 때리는 꿈. 집 밖을 나서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다. 꽃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가슴속에 꼭꼭 묻어 두었다.

50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꽃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꽃할머니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 꽃할머니는 그제야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는다. “지금 세상에는 그런 일 없어야지. 나 같은 사람 다시는 없어야지. 내 잘못도 아닌데 일생을 다 잃어버리고…”꽃할머니는 2010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여 아이들도 나도 훌쩍거리게 된다. 아이들은 무작정 일본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욱 본질에 접근하여야 한다. 전쟁이 왜 없어져야 하는지, 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 이 책의 취지에 맞게 과거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현재의 아픔을 공감하며 평화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 나눠야 한다.

“난 꽃이 좋아. 사람들이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꽃할머니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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