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난 뒤 내 아이의 삶
내가 떠난 뒤 내 아이의 삶
  • 승인 2017.08.0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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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가끔 일 때문에 서울에 간다. 요즘에는 서울에 갈 일이 더 잦아졌는데 대학 때 친구들이 부친상, 모친상 등의 부고소식을 자주 전하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예전 친구들은 배도 나오고 머리숱도 적어지고 주름도 늘어나 부쩍 나이 든 모습들이다. 그래도 술잔이 한두 잔 돌면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가 그때 우리가 얼마나 어리고 순진했는지를 얘기하며 웃음 짓는다.

때때로 옛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가신 친구의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그리워서 울게 되기도 한다. 철없던 시절 친구네서 놀고 있으면 넉넉한 웃음으로 고봉밥을 떠주시던 친구 어머님, 술을 마시다가 버스가 끊겨 학교와 가까운 친구네로 밤늦게 몰려가면 못 본 척 재워주시던 말없이 자상하신 친구 아버님, 이제는 그분들을 뵐 수 없다는 생각에 상주인 친구를 붙잡고 울 때도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토록 젊은 어머니였는데, 그토록 강건하시던 아버지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가시나, 황망해서 오랫동안 영정을 보며 서 있을 때도 있다. 이제 친구들 중에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들이 꽤 된다. 나 역시 장례식장에 가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울게 된다.

지난주에도 친구로부터 부고를 받았다. 당연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하며 전화기를 열었는데 부모님 상이 아니라 배우자 상이라는 문자였다.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나와 마음이 잘 맞아 대학 때 곧잘 붙어 다니던 동기 녀석이었다. 작년에 만나서 술잔을 기울일 때 와이프가 항암 치료를 잘 견뎌내는 중이라고 밝은 소식을 전했었는데 갑자기 부고를 알린 것이다. 친구는 예쁜 대학 후배랑 결혼했다.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후배라 암 투병 중이라는 얘기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너무 젊으니 털고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빨리 가버릴 줄은 몰랐다.

친구의 문자를 받고 가장 걱정이 됐던 것은 배우자를 잃은 친구가 아니라 친구의 딸아이였다. 나는 내 나이 마흔에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떻게 나한테서 이렇게 빨리 엄마를 빼앗아가나!’라며 신을 원망했는데, 일곱 살짜리가 엄마 없이 어찌 살아갈까 싶어 목이 메었다.

아이가 아플 때, 잠이 안 올 때, 악몽을 꿨을 때, 친구와 싸웠을 때, 선생님한테 야단맞았을 때, 학교가기 싫을 때, 넘어졌을 때, 궁금한 게 생겼을 때,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 아이 앞에 펼쳐진 외롭고 힘든 모든 날들과 엄마가 필요한 수없이 많은 순간에 저 어린 것이 어떻게 견뎌낼지 알 수 없어서 눈물이 났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자식을 낳으면 철이 든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 사람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철이 든다. 모든 어려운 순간, 모든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인간은 성숙한다. ‘부모의 도움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해질 때 인간은 비로소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친구의 딸아이는 이모와 사촌형제들이 많고 아빠도 다정한 성격이라 살뜰한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엄마 없는 결핍감을 떨쳐낼 수는 없을 테니 더 빨리 철이 드는 대신 더 많이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순서 없이 닥치는 것이라 어떤 이에게는 더 빨리 찾아오고 어떤 이는 조금 늦을 수는 있겠지만 어떤 인간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으니 우리에게도 조만간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우리가 부모님의 죽음 앞에 홀로 외로이 놓였던 것처럼 우리아이들에게도 부모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할 시간이 온다. 지금은 아이가 잘못하면 내가 옆에서 충고를 해줄 수도 있고 아이의 부족함을 도와줄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을 아이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러니 아이를 잘 키운다는 말은 좋은 대학을 보낸다는 말이 아니라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가는 아이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우리 아이가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에게 더 많이 공부하라고, 더 앞서나가라고 다그치기 전에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방학은 그런 긴 이야기를 하기 좋은 시간이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닥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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