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멍 때리기’를 허하라 - <딴 생각 중>
나에게 ‘멍 때리기’를 허하라 - <딴 생각 중>
  • 승인 2017.08.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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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그 일이 처음 일어났을 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나는 너무너무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끝내 나는 참지 못했다. 당연히 다음 날 선생님은 우리 부모님을 학교에 불렀다. 나는 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음 그러니까, 달리는 말들을 따라갔어요.” 나는 어른들에게 말했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은 거기서 시작되었어요.”>

프랑스 작가 마리 도를레앙의 그림책 <딴 생각 중>의 처음 몇 페이지의 내용이다. 이 책은 단편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선생님과 부모님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결국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같은 평범한 어른이 되어 살아가지만 다행히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시간을 글로 표현하는 작가가 되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극히 간소한 분량의 글과 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이야기를 진행한다. 우선 절제된 색과 그림으로 느낌이 깔끔하고 청량하다.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사슴의 뿔에 앉기도 하고, 질주하는 말을 앞지르기도 하고, 아주 큰 물고기와 달리기도 하고 구름 속에 있기도 한다. 노란 새가 된 주인공을 따라 창문너머 어디든 날아다닌다. 바쁜 현실에 묶여 있는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준다. 또 지극히 현실적인 부모와 지극히 추상적인 주인공 대화에 우리 모습을 보는 듯해 웃음이 지어진다. 부모님은 소년을 ‘바람 같은 아이’라고 한다. 그건 칭찬이 아니라 큰일이고 걱정스럽고 문제라는 이야기다. 병원에 데리고 가 진찰도 해 보고, 바람이 생산적이고 현실에서 살 수 있는 기술을 갖도록 피아노를 사 주기도 하지만 소년의 마음은 늘 딴 곳에 가 있다.

그림책 <딴 생각 중>은 참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여러 관점에서 해석해 볼 여지들이 있어 토론거리가 풍성하다. 우선은 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딴 생각 중’이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늘 ‘한 눈 파는 중’ 또는 ‘멍 때리는 중’으로 보인다. ‘한 눈을 판다’, ‘멍 때린다’는 말 속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들어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쉽게 자기 비하에 빠진다. ‘나는 왜 이렇게 집중력이 약할까?’ ‘나는 왜 이리 게으를까?’ ‘나는 왜 이리 산만할까?’ 하고 말이다. 과연 멍 때리는 일, 한 눈 파는 일이 나쁘기만 한 걸까? 그리고 왜 자꾸 멍 때리는 시간으로 빠져들게 될까?

비생산적이라 생각한 ‘멍 때리기’가 사실은 창의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이작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흘러 내리는 물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찾아내 “유레카”를 외친 것도 ‘멍 때리기’ 시간의 결과물이다. 열심히 일하는 데도 창의적 성과가 떨어지는 것은 우리의 뇌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피곤한 탓이어서 지친 상태이고 뇌가 멍을 때리는 순간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가 다시 리셋이 되어 초기화 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멍 때리는 시간으로 빠져들지 않으면 알아서 자기 자신에게 멍 때릴 수 있도록 배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모두 무지 바쁘게 산다. 성인은 차치하고서도 유아들도 그렇고 초등학생들도 바빠 틈이 없다. 바쁜 스케줄을 두고 멍 때리는 아이를 용납할 어른은 없다. 아이들에게 날아 갈 비난은 여러 가지로 예상된다.

때로는 아이의 가녀린 등짝이 찰싹 매운 손맛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엔 그랬다. 그러니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바쁜 스케줄을 먼저 조정하고 ‘멍 때리는 일’을 허하여 여유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미래사회에 창의성은 삶의 밑천이자 생존과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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